미국 내의 주요 도시들 중 LA가 가장 불친절한 도시로 지적되었다는 조사가 나왔다. 27년 전인가 처음으로 LA에 와서 무슨 물건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 하찮은 것을 바꾸려고 세이프웨이에 갔다가 매니저라는 백인 아주머니한테 퉁명스러운 대접을 받고서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던 기억이 난다.
위스컨신의 조그만 도시에서 5년 간 미국 사람들의 전형적인 친절함 속에 젖어 살다가 온 그 시절의 나에게는 미소짓지 않는 가게 종업원이라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였고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인종 차별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촌스러운 가게 종업원에게는 자동적으로 먼저 농담이나 인사말을 던져 웃음을 끌어내거나 아니면 그의 위치를 스스로 깨닫도록 힌트를 줄 정도로 LA 사는 요령을 터득한 것 같다.
우습게도 그런 요령이 잘 들어먹지 않는 곳이 LA에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한인타운이다. 원시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모르는 사람들이 마주 칠 때 미소를 지음으로써 또는 인사를 나눔으로써 서로 적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인류의 습관인 것 같은데 우리 한인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잘 통하지 않는다. “미친놈인가, 왜 괜히 히죽 히죽 웃어” 또는 “별 꼴이야, 저 사람이 나에게 무슨 흑심이 있나 봐” 정도의 반응을 얻기가 십상이다.
거기에다가 많은 재미 한인들이 등에 걸머지고 다니는 짐, “지금은 할 수 없어서 비록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그래도 옛적에는” 하는 일종의 열등의식이 끼어 들고 그에 못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작용하는 우월감, “내가 그래도 이만큼 차려 놓고 지내는데 감히 네가” 하는 요소까지 더해지면 왜 그렇게도 한인타운에서는 대접다운 대접을 받기 힘든 지 이해할 만도 하다.
내친 김에 이번에는 고객들에 대한 것을 얘기해 보면 그 쪽에도 골치 아플 정도로 많은 문제가 있다. 우선 돈이면 왕이라는 태도가 문제다. 사람들 사는 곳은 어디이던 상식의 범위 안에서 일이 돌아가게 마련인데 돈이면 안 될 일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곳이 한인타운이다. 아마도 되는 일도 없지만 안 되는 일도 없다는 한국에서의 사고방식의 연장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나마 오랜 관습 밑에서 지켜지던 예의와 자제까지 없어진 미국 땅이라 더 극단의 양상을 보인다.
필자가 근무하는 법정에 서는 한인들 중 가끔 변호사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 많은 돈을 주었는데 결과가 그래 이것뿐이냐”라는 것이 이유이다. 결국 사짜 붙은 놈들은 모조리 도둑놈에다 사기꾼이라는 말로 중간에서 말을 전하는 통역사까지 함께 욕을 먹이고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불친절한 도시 가운데에서도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타운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처지가 딱하게 느껴지곤 한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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