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빌 장로교회 박흥수 목사
엊그제가 흥보씨 아내의 생일이었다. 소박하고 검소하게만 살아왔던 살림꾼이라, 그녀는 자신을 위해 큰돈을 쓸 줄 모르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는 주부다. 모처럼 시장에 나간 흥부씨는 연기가 나지 않는 전기생선구이판을 아내에게 선물하려고 마음먹고 여러 곳을 살펴보았다. 마침 MADE IN KOREA 마크가 선명한 제품을 발견하고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흥부씨는 무작정 쇼핑 카트에 실었다. 30이 다 되도록 결혼할 생각을 안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는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지게를 진 총각과 물동이를 인 처녀의 모습을 재미나게 연출한 인형 한 쌍을 골랐다. 헌데 인형을 안고 카트에 와보니 생선구이 판이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무래도 가격이 마음에 걸려서 도로 진열대에 내려놓았단다. 가격표에 적힌 세자리 숫자가 마음에 허락지 않았다는 대답에 흥부씨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네자리 숫자가 넘는 현금을 이웃에게 선물로 주었는지, 새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 6일, 아침 11시부터 밤 9시까지 식당을 경영하는 ㄱ씨 가정은 주일 하루만 쉬는 날이지만 교회에서 반나절을 봉사하고 나면, 자유시간을 갖는 것은 겨우 반나절뿐이다. 그래도 ㄱ씨 가정은 늘 기쁨이 충만하다. 헌데, 큰 딸애가 다음달에 결혼식을 올린다. 생전 처음 결혼 예물이며 가구들을 준비해 주다보니 경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많은 혼수를 해주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겠지만 마음대로 다 못해주는 심정이 자못 가슴아프다. 이런 ㄱ씨의 마음을 읽고 난 흥부네 아내는 그동안 푼푼이 저축해 두었던 예금을 찾아 네 자리 숫자의 거금을 선물과 함께 살며시 전달해 주었다. 결혼식장 앞에서 봉투를 건네주며 겉치레 인사를 나누는 것보다는 돈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이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라는 흥부네 아내의 지론이다. 그 날밤 선물을 풀어보던 ㄱ씨의 가족들은 많은 현금이 든 카드 봉투를 들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다음날 밤, ㄱ씨는 그런 큰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흥부네 집에 봉투 째 되돌려주고 달아나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식당을 찾아간 흥부네 부부는 또 그 봉투를 반 강제로 맡겨버렸고, 자신의 정성을 받아달라고 오히려 간청했다. 그 날밤 흥부네를 찾아온 ㄱ씨 부부는 반반씩이라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서로가 나눈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이미 확인한 마당에서, 서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원한다는 간절하고도 간곡한 사정이었다. 반반씩 나누어 가진 사랑이 두 배 세배 열 배가되어 가슴에 뿌듯하다. 싸움은 끝났다. ㄱ씨 부부가 차를 타고 떠난 뒤 흥부네 가슴속엔 훈훈한 정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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