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대한민국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젊은 날에 미국땅을 찾아와 이토록 오래 살면서도 아직도 이 나라가 몸에 배지 않는다.
낯설지 않은 동네이름, 학생시절에 글을 쓴답시고 여비도 없이 빈손으로 찾아다니던 산속의 이 절, 저 절, 스님들의 빈 배에도 부족한 밥술을 어리광을 떨며 배급받듯 얻어 먹으면서도 스님이 밥 떠주는 가느다란 흰 손에서 떨어지던 가느다란 빛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오히려 울고 싶었던 그 때, 떨어질듯 매달린 숟가락에 담겨오는 밥술을 고맙게 받아 먹으면 밥그릇을 스치며 내는 작은 숟가락 소리마저 부끄럽게 실눈을 조용히 뜨고 살살 웃던 절간의 고요, 아무리 대한민국이 소용돌이를 쳐도 대한민국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눈인사를 건넨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비켜가지 못할 숙명적 미래를 앞에 놓고 새로운 삶을 또 꿈에다 버무려야 하는 가난한 시장 사람들이 아직도 나에게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라 느끼면서 생각이 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눈인사를 건넨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틈새에 시간이 많이 끼면 때도 끼고 녹물도 낀다. 그렇다고 내가 누어 자던 사랑방을 더럽다고 잊어버리고, 가을비가 눈치도 없이 천장을 비집고 내려온다고, 겨울바람이 찬손을 펴들고 방벽을 문댄다고 내가 살던 집을 버릴 수는 없겠지.대한민국이 안정이란 종착지에 도착하지 못하여 아직도 덜거덕거리는 길을 가며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혼란한 대한민국을 향하여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말릴 수는 없겠
지.
남자들이 양복을 걸치고 여자들이 비록 양장에 서양식 화장을 한 지가 오래 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의 이름은 백년 천년이 흘러도 그 얼마나 깨끗한 백의민족이란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개인이 떠나는 여행길에는 도로표지판에 공손한 안내문도 있고 숫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변두리 길이 되는 도로의 고유번호도 있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목적지는 슬렁슬렁 가더라도 따놓은 당상이지만 국가나 민족이 가는 여행길에는 안내문도 없고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도로 표지판도 없다. 흩어져 지천인 것이 경쟁과 긴장 뿐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은 이정표가 없는 광활한 벌판에서 살얼음을 더듬어 짚고 가는 정치와 경제의 여행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고 다를 바 없다.
헤매이기에 지치고 길 찾기에 아려 눈에서 침울한 눈물이 난다고 가는 길을 포기하고, 민족이 흩어지고 대한민국이 빈 자리가 되어 세계에다 내어줄 수는 없다.
역사가 무엇인가? 민족의 추억이 아니던가!
삼면의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의 슬픔이 무엇인가? 아이들은 아직도 시골길을 지나는 버스를 보면 버스를 향하여 손을 흔든다.
그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를 묻지 않고 또한 어디로 가는지를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가고 있는 버스에다 손을 흔들며 외로운 인사를 보낼 뿐이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 힘이 빠지고 지친 사람들이다. 무서운 사람, 깡패같은 몇 사람으로부터 몇 대의 매를 맞고 시달리더니 서러워서 눈알이 벌개지고 한숨에다 눈물에다 밥을 비빈다.
그러면서도 새벽이면 깨어나기 싫다는 단잠을 흔들어 등에 지고 시장으로, 공장으로, 농장으로, 어장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끈질긴 사람들, 이렇게 신선한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대한민국, 마음 속으로 어디라도 바래다 주고 싶다. 아니, 화롯불에 손을 데워 장갑도 끼지 않은 대한민국의 찬 손을 따뜻한 손으로 잡고 그 어떤 곳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그 곳으로 데려다 주고 싶다.
김윤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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