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만두 때문인가, 온통 주변이 쓰레기더미 속이라고 느껴진다. 만두 속만 쓰레기를 넣었나? 내 속에는 더욱 더 더러운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데. 겉만 그럴싸하게 포장해 간신히 그 악취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내 안에 있는 미움, 탐욕, 질투, 불만 등등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데 왜 그리도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자리잡고 있는지, 언제부터인가 가장 싫어했던 그 이상한 것들이 슬며시 내 안을 파고들어 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많이 배운 이들을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일수록 폭 넓게 무시하고 폭 깊게 무시하되, 안 그런 척하면서 무시한다는 것을 종종 느꼈기 때문이다. 그 은근한 무시함에 언제나 나는 주눅이 들어있었고, 그 주눅은 보다 스스로를 거칠고 과격하게 보이도록 노력하게 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나의 최종 학력이 중학교 퇴학이라는 자랑스런 학벌로 인해, 절대적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버티기 위한 무식하기 짝이 없는 통박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고교에 진학했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그럭저럭 자랑스런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비록 우등상은 받지 못했지만, 고교 졸업은 개인적으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상대적 평가에서는 늘 뒤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자격지심 때문인지 박사, 석사, 학사라는 ‘사’자로 끝나는 이들에게 왠지 모르게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울화를 치밀게 했다.
이후 만학으로 학업의 고통을 감수했고(참고로, 내가 공부를 했다는 것은 산이 바다로 옮겨지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다. 이는 분명 산고의 고통보다 더욱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이었다) 결국 ‘사’자가 붙여진 ‘학사, 석사, 목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자신이 학벌과 지식으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인가, 선교회 아이들에게 “야, 학교? 먼저 사람이 되고 공부를 해야지, 사람도 되지 않고 공부만 한다고 어디다 쓰냐? 마약하고, 갱하고, 도박하면서 정치하고 의사, 변호사, 교사되면 여러 사람 다친다. 그러니 제발 공부하지 말아라” 혹은 “공부 못하면, 다른 거 하면 되잖아. 어~ 너 차 잘 고치네. 너는 정비공해라. 어~ 너는 그림 잘 그리네. 그래 너는 페인트 하면 되겠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되지 않겠냐?”로 말을 마무리한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어느 정도 이런 사고로 굳어질 무렵 큰아들이 이 아빠를 닮아 공부에 너무도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서인지(다 내 탓이지!) 학점이 모자라 고교 졸업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있었고, ‘적어도 고교는 졸업해야지’ 하는지 아비의 마음을 읽었는지, 돈 내고 졸업장 주는 곳을 찾아가겠다며 제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아들이 눈치를 볼 정도로 언제부터 그렇게 학벌에 연연했었는가?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날 저녁, 아들에게 “고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좋다.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벌을 위해 양심을 팔면서, 처음 사회에 발을 딛는 이 순간부터 편법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부족해도 바르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5년, 아니 10년이 걸리더라도, 네가 스스로 할 수 있고 필요할 때 노력해서 얻어라”고 심각한 충고를 했다. 돌아서며 뿌듯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같이 스스로가 너무나 기특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사한 인간은 오늘, 다시 또 마음에 가득한 욕심과 교만으로 어젯밤, 아들에게 한 엄청나게 교양 있는 이야기들을 망각하고, 만두껍질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속도 겉도 한결같이 겸손한, 그리고 한치의 다를 것이 없는 자아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쉽지 않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적어도 조금씩 나아지긴 할 테니까, 노력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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