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수족관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는 소아과 전문의 이정옥씨.
‘다목적 소아과’개설한 전문의 이정옥씨
어린이 건강 노하우 나눠주고 싶어
병원내 각종 교양 클래스도 곧 개강
지난달 15일 코로나에 ‘다목적 소아과’가 하나 탄생했다. 소아 진료와 더불어 부모를 위한 육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 병원의 원장은 애너하임에서 지난 20년간 어린이들을 진료해온 소아혈액암 전문의 이정옥(54)씨다.
전문의가 된지 30년, 숱한 경험으로 터득한 육아법과 의학적 지식을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어린이들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건강을 모두 책임지겠다고 오픈한 병원이다.
오후 5시부터 진료가 시작되는 이 병원은 매일 오후7시부터 2시간 동안 육아 강의가 진행된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월요일 성경공부, 화요일 좋은부모교실, 수요일 크리스천 상담, 목요일 아이들과 공작, 금요일 북카페이며 앞으로 수채화교실과 도자기교실도 개강할 예정이다.
오전 8시 애나하임의 병원으로 출근해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다가 진료가 끝나자마자 코로나 병원으로 다시 출근, 오후9시까지 진료를 계속하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이씨는 “이제야 소아과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 같다”고 행복해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일중독 의사, 가족보다 환자를 우선하기로 유명한 이씨가 언급한 그동안 못다 했던 사명은 무엇일까. 소아과 의사라면 누구나 처음 배우는 1장1절 소아과 의사의 궁극적인 목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돕는 편안하고 바른 전문가로서의 조언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아이들에게 예방주사 맞히고 아픈 곳 치료하는데 급급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소홀히 했다는 이씨는 소아과를 찾는 이유가 단지 처방전을 얻기 위함보다는 아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함이 돼야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한다. 아이의 신체적인 질병 치료와 예방, 의료 정보 제공도 필요하지만 경험에 의한 육아 정보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툭 하면 폐렴을 앓아 병원을 찾아오는 아이가 있었어요.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라서 잔병치레가 많다고 설명했지만, 곁에서 아이를 쭉 지켜보니 아이가 정신적으로 위축돼 있었습니다”
이씨는 ‘심리적 면역’이라는 의학적 용어를 들먹이며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위축되면 면역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감정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이 경우엔 아무리 약으로 치료를 해도 끝이 없다고 한다. 처방약보다는 아이가 왜 정신적으로 위축돼 있는지를 밝혀내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씨는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 수련의로 생활하다가 84년 애나하임의 마틴 루터 병원 내 ‘이정옥 소아과’를 개원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30∼40명의 소아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이씨는 젖먹이 때 만났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고 찾아올 때면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소아과 의사의 역할은 병을 고쳐 주는 것에 우선하여 부모의 육아 불안을 덜어주고 감정적인 지지자가 되어 주는 거죠. 사실 내 스스로가 둘째 아들을 키우면서 아픔이 많았어요. 내 자식 사랑을 통해 인간 사랑의 폭을 넓혀 가는거죠”
가족들은 일할 만큼 일했다며 은퇴 계획이나 세우라고 성화지만,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육아에서 집안 어른들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은 이민 생활, 우리 아이를 아는 단골 소아과 의사가 있다는 건 무엇보다 미더운 사실이고 그만큼 소아과 의사의 사명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되찾은 깨달음을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의사라고 질병 예방과 치료에 치중하는 건 절반의 성공일 뿐이에요. 내가 돌보는 아이가 좋은 성인으로 자라도록 아이의 대변자가 되고, 부모의 상담자가 돼야 해요”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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