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가 자리한 뉴욕 월가의 위상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본주의의 메카로서의 지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의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가 지난달 전자증권거래회사인 아키펠러고(Archipelago)와 합병 계획을 발표한 직후 뉴욕증권거래소 존 테인 회장이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증권브로커들과 회동했다. 합병 계획에 대한 그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증권브로커들은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들은 존 테인 회장과 진지하게 합병계획의 장단점을 논의했다. 합병이 성사되려면 이들의 3분의 2가 동의해야만 한다. 증권브로커들의 태도는 느슨하지 않았다. 테인 회장의 합병계획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질문이 쏟아졌다. “전자증권거래회사와의 합병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매일 일하는 현장 브로커들이 일자리를 잃게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으뜸이었다. 이에 대해 테인 회장은 “만일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지금 당장 뉴욕증권거래소의 지분을 처분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증권거래소에서 브로커가 갖고 있는 지분은 약 200만 달러다.
증권 전자거래 부상 따라 입지 상대적 약화
버블후유증·리더십 부재·잇단 스캔들로 홍역
대형증권사들 본사이전 이미 단행했거나 계획 중
“비즈니스들 떠나면 주택가로 변모 가능성” 진단도
비공개회동이었기 때문에 테인 회장의 답변이 일반에 직접 전달된 것은 아니다. 3명의 현장 증권브로커와 테인 회장의 참모에 의해 추후 확인된 질문과 답변 내용이다. 이 회동의 분위기가 부드럽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호에서 회동 분위기를 계속 이어갔다.
“증권거래소에 지분이 없는 거래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다른 브로커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테인 회장의 답변은 냉정했다. “만일 처분할 지분이 없다면 그냥 증권거래소 문을 나가 맥도널드에서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증권거래소에 가치를 부가할 자질이 있는 브로커만 살아 남을 것이다.” 실제 테인 회장은 이러한 차가운 발언을 부인하지 않았다.
월가에는 이처럼 참혹한 농담이 즐겨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은 브로커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회동 후 몇몇 브로커들이 인근 맥도널드에 모였다. 한 브로커가 200달러를 내고 동료들에게 햄버거를 돌렸다. 브로커들은 테인 회장의 발언 내용을 곱씹어보고 향후 진로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오랫동안 금융지역의 핵심이었다. 월가의 이 곳은 금융업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브로드웨이가 연극계의 메카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전자증권거래가 부상하면서 월가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파워센터로서의 월가의 면모가 손상될 게 불가피하다. 이미 상당수 대형 증권회사들이 월가를 떠나 중소도시나 뉴저지 등지로 이전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1,300명의 브로커를 두고 있던 모건스탠리는 이들 브로커 대다수를 웨스트체스터로 재배치했다. 남부 맨해튼에서 증권사 가운데 가장 큰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골드만삭스는 그라운드 제로 인근으로 본사를 옮길 계획이었다가 최근 다른 곳을 물색하고 있다.
고용전문 변호사 제프리 리들은 무언가 변화를 감지했다. 많은 고객들이 뉴욕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리들은 “월가가 진정한 거래장소보다는 하나의 아이디어 정도로 기억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했다. 월가가 구체적인 장소로서의 의미를 잃고 있는 다른 이유는 금융업 전반이 예전 같이 견고한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도 있다.
주식시장은 거품붕괴의 후유증에서 아직도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잇단 스캔들은 월가의 이미지를 훼손했고 월가의 로비 파워를 약화시켰다. 또한 월가에는 리더가 없다. 1995년 소액 투자자들 문제를 위한 개혁조치를 강력히 추진한 메릴린치의 댄 털리 회장 같은 인물이 없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딕 그로스 전 회장이 9.11 사건 이후 증시부양을 시도했지만 천문학적인 연봉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2003년 퇴출되고 말았다.
물론 월가가 당장 유령마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 관계자들은 현재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 지역에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지난해 약 800만 명이 이곳을 찾았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라운드 제로를 들러보았다.
이 지역 정부관계자들은 비즈니스가 이 곳을 떠나면 그 자리에 주택가를 만들 생각이다. 지난주 정부는 8억 달러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공원과 놀이터를 새로 만들어 주민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주변 도로를 새 단장할 예산도 이미 잡혀 있다. 213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증권거래소와 월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밀려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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