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갔다가 격조했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이 친구에게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운 것은 웨스트포인트를 우등으로 졸업한 아들이다. 그의 아들이 쟁쟁하고 똑똑한 미국 청년들로 이루어진 웨스트포인트 사관후보생 연대를 이끌고 그 지휘관으로서 맨 앞장을 서서 졸업을 하던 날 그는 친구들을 모아 한턱을 내었다. 지금 이 자랑스러운 아들은 두 번이나 진급을 거듭하여 대위로서 근무하고 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이라크로 가라는 명령이 내리면 어떡하지?”하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그 친구는 조용하게 “가라고 하면 가야지. 의무인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담담한 대답을 들으며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졌다. 담담하게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 왜냐하면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최근 타임지에는 이라크의 자살폭탄 자원 후보자의 면담 기사가 실렸다. 대단히 종교적이고 진지해 보이는 이 20세의 이라크 청년은 사담 후세인의 지지자는 아니었으나 미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반군에 가담했으며 지금은 거의 수도자와 같은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자살 폭격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을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는 전쟁을 우리는 무슨 이유로 하는 걸까? 애초에 이 전쟁이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믿었던 대량 살상무기(WMD)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원자탄은 커녕 화학무기나 세균무기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고 3류 로맨스 소설이나 쓰고 있던 사담 후세인은 알카에다와는 관련조차 없었다는 것이 밝혀진 지 오래인 지금 무엇 때문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라크에서 죽어가고 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 는다.
부시 대통령이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타고 내려 “임무 완수”를 보고한 이후 1,700명이 넘는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 저항세력을 ‘더 갈데 없는 놈들’이라고 하였고 체니 부통령은 그들이 ‘단말마의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년 반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저항세력은 그 열기가 더 강렬해질 뿐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언제까지 더 전쟁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지만 미국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달 럼스펠드 장관은 이라크의 내전은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야말로 미국은 이제 영구전쟁의 시대에 들어선 셈이다.
국내에서는 자유가 줄어들고 국외에서는 목적이 무엇인지 희미한 전쟁에 젊은이들이 끝없이 죽어가고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로부터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나라, 그것이 과연 우리가 제2의 조국으로 스스로 선택한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임을 선포한 나라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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