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보따리를 싸놓고 짐을 풀었다 쌌다 되풀이하던 어릴 적 설레는 마음으로 밤새 잠을 뒤척였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가이드와 전용 차량으로 너야풀에 도착하여 운전사 아저씨의 극진한 환송을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해발 1,475미터에 위치한 힐레에 도착하여 만두 비슷한 ‘모모’를 점심으로 시켰다. 주문한 지 1시간 반이 돼서야 나온 야크 치즈와 야채를 넣은 모모 20개를 가져간 고추장에 발라 1회용 미소 된장국과 함께 순식간에 해치웠다.
오후 2시쯤 출발. 게스트하우스까지 30여 미터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눈앞에 둔 채 빗방울이 떨어진다. 몬순기후로 오후 4∼5시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숨은 턱까지 차 올라, 가이드가 사준 대나무 지팡이를 짚었지만, 한발자국 떼기가 천근 만근이다. 5분이 지나도 비가 그칠 기미가 없으니 가이드는 우비를 꺼내 입혀주며 가자고 재촉한다.
울레리에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에서 낮 동안 태양열로 데워진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장작불 앞에서 블랙티를 마시며 오늘 하루의 피로를 푼다. 창문 밖으로 비를 맞으며 하얀 거품을 품어내고 있는 히말라야를 올려다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트래킹 둘째 날, 나는 가이드와 서둘러 아침을 먹고 고레파니로 향했다. 고레파니까지는 지루하지 않게 정글과 숲, 그리고 경치가 어우러진 여섯 시간의 적당한 산행이었다. 당나귀가 쏟아낸 배설물이 길가에 어지럽게 쌓여있고 그것을 피해 오르내리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땅은 자연의 기운이 충만하고 짐승의 배설물과 낙엽이 겹겹이 쌓여 비가 오면 그 모든 것이 적당히 섞여 기름진 토양을 만든다. 푹신한 낙엽 위를 걸으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마음이 즐겁기 그지없다.
해발 2,750미터 고레파니에 도착하니 가이드의 삼촌이 두 명의 다른 일행과 반갑게 우릴 맞았다. 푼힐 전망대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날씨로 인해 히말라야를 볼 수 없게되어 하루 더 묵고 있다며 마당에 나와 볕을 쬐며 책을 읽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니 어제 내린 비로 깨끗해져야 할 산이 구름으로 덮여있다. 오늘도 산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다른 팀 가이드의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이드와 서둘러 출발하니 미적거리던 다른 팀도 따라나선다. 1시간쯤 오르다 다른 팀은 도중하차-. 해발 3,193미터인 푼힐 전망대에 올라보니 저 멀리 다울라기리, 닐기리, 안나프르나 봉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신들의 땅,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그들의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아침을 먹고 구릉 힐을 지나 타다파니를 거쳐 간드룩까지 간 트래킹 셋째 날은 거의 열 두 시간의 힘든 산행이었다. 그 동안은 밤마다 다리에 스프레이와 젤을 발라 피로를 씻었으나 오늘은 왠지 더 힘들어 뿌리고 바를 아무 생각도 없다.
간드룩에서 맞이한 산행 넷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보니 얼굴은 부어있고 근육통과 엄지발가락 통증으로 걷기가 불편하다. 피로에 입술마저 터져 다른 멀쩡한 트래커들 보기에 민망하다. 간드룩의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안나프루나 사우스, 임출리, 그리고 마챠푸레봉은 아주 가까이 선명하게 보여 이제까지의 피로가 확 깨는 느낌이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마챠푸레봉은 신의 영역이라 누구도 오를 수 없는 영산이라 한다. 인간의 끊임없는 자연에 대한 도전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이제 히말라야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신비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삶의 적극적인 자극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히말라야에 대한 두려움이란 단지 마음속에서 극복하지 못한 감정의 존재였을 뿐이다. 마음속 두려움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주면서 그 두려움의 실제와 가까이 하자. 그것이 뭐든 간에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두려움이란 없을 테니까… <계속>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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