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압력으로 망명중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근황이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정치적인 공방이 아니라 과학논쟁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그는 승려이면서도 과학에 무척 관심이 많다. 승려들이 행하는 깊은 명상이 동정과 긍정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키도록 두뇌를 훈련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다. 일례로 달라이 라마는 내달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신경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의 연례회의에 참석해 명상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승려·일반인 대상 실험… 사랑·박애 관련 뇌 세포 활동 활발해져
직장인 25명 명상 코스, 행복할 때 반응하는 왼쪽 앞 뇌 민활
불교 승려 8명 ‘좌선’… 뇌의 정신조절 기능 ‘감마선’ 다량 방출
달라이 라마 내달 미신경학회 모임 참석 ‘명상의 중요성’ 강연
반대자들 “영적인 차원에 지나치게 몰입해 과학적 입증 곤란”
그러나 뇌 연구자 544명이 신경학협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달라이 라마의 강연 계획을 취소하라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주제를 거론하는 것은 학회 모임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대파의 움직임이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맞받아 쳤다.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 중국계 이민자거나 그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이 티베트의 독립을 무력으로 진압하자 1959년 조국을 떠났다.
이에 대해 탄원서에 서명한 학자들은 “정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과학적이어야 할 회의가 지나치게 영적인 차원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과학적으로 엄격한 이론과 증거를 바탕으로 발표와 토론이 진행돼야 하는데 달라이 라마의 강연은 이러한 원칙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지난 10년간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은 명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기도원에서 행해지거나,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던 것이 일반인들의 생활에 파고들었다. 이에 힘입어 달라이 라마는 여러 학자들과 함께 수도승들의 명상이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웃을 사랑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낳는 데 기여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집중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팀이 공동으로 연구에 들어갔다. 생체기술 관련 회사 직원 25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2003년 리처드 데이비슨 박사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놀라운 점이 밝혀졌다. 직원들이 명상 코스를 밟자 관자놀이 부근의 두뇌 왼쪽 앞부분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런데 이 부분은 바로 행복감, 긍정적 사고를 할 때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곳이다. 명상이 행복이나 긍정적인 사고와 관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2004년에 유사한 연구가 또 실시됐다. 달라이 라마가 창립을 도운 비영리단체 ‘Mind and Life Institute’가 지원했다. 데이비슨 박사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들이 동참했다. 티베트 승려 8명이 사랑을 주제로 명상할 때 뇌파를 전기 스캐너로 관찰했다. 강력한 감마선이 감지됐다. 이는 정신을 집중하거나 정서적 조절기능과 관계되는 뇌 세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명상을 배우는 대학생 10명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는데, 이들에게서 나오는 감마선은 아주 약했다.
이들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동정이나 박애주의와 같은 인간의 성품은 명상과 같은 정신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개선되고 함양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강연취소에 서명한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문제점이 있다고 반박한다.
첫째, 이 연구를 주도한 데이비슨 박사는 달라이 라마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어 이번 연구가 객관성을 결여한다는 것이다. 둘째, 연구대상이 된 티베트 승려들은 대학생들보다 나이가 12~45세나 많고 명상 기술이 뛰어나 감마선 방출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게 무리라는 것이다. 혹 승려들이 명상 이전에도 감마선을 많이 방출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명상의 효과에 대한 의문제기다.
이에 대해 데이비슨 박사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성급한 무용론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또 증명하기 어렵다고 이 연구 자체를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탄원서에 서명한 학자들도 이 점에는 수긍한다. 문제는 두뇌는 신비로운 것이며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끝없는 우주와 같이 불가사의하다는 데 있다.
신경과학은 과학과 근대철학의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학문보다 더욱 복잡하다. 그래서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튼 이번 학회 모임에서 달라이 라마는 연설을 예정대로 할 것 같다. 학회 회장인 캐롤 반스 박사는 강연 취소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달라이 라마의 강연 내용이 무엇이고 그 파장이 어떨지 벌써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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