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새벽부터 나온 한국인들 줄을 선채 순서를 지키고 있다. 한번 떨어지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요즘의 상황을 반영한 듯 이들의 표정이 긴장돼 있다. <김상목 특파원>
김상목 기자 서울 리포트
주한 미대사관 비자 인터뷰 대기자들
조기유학·연수·졸업여행 등 부푼꿈
관광사 직원과 즉석 모의 인터뷰도
‘떨어지면 1년 기다려야’긴장 못풀어
가을답지 않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 17일 오전 10시 광화문의 미 대사관. 건물을 둘러싼 경찰의 삼엄한 경비속에 200명은 족히 넘을 비자신청 대기자들이 입구에서부터 안국동쪽 담을 돌아 100여미터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잡은 대기자들은 ‘수능시험장’ 입장을 기다리는 수험생들 마냥 손가락을 짚어가며 비자서류 뭉치들을 확인하며 여행사 직원들과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전화기를 연신 두드리며 뭔가를 확인했다. 맨 앞에 서있던 50대 여성은 구두시험을 보듯 여행사 직원과 일문일답을 하며 미국 관광코스를 암기하고 있었다.
“미 시민권 신청 사실을 숨기고 방문비자를 신청했다”며 근심을 감추지 못하는 40대 초반의 병원 원무과장, 대학졸업 전 미국을 가보고 싶어 관광비자를 신청하고 이날 새벽 대구에서 올라 왔다는 여대생, 그리고 세 자녀 중 막내딸만 미 시민권이 없어 골치라며 두 아들의 국적포기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는 한 대학교수 부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사연이 넘쳐 났다.
줄 중간쯤 서있던 30대 후반의 한 가정주부를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의 조기유학을 위해 자신이 유학생이 되기로 했다는 이 주부는 “초등학생들의 유학비자 심사가 까다로워지자 요즘엔 자녀들 조기유학을 위해 기꺼이 유학생 대열에 합류하는 나같은 30대 후반∼40대 초반 주부들이 많다”며 자신의 행동이 시류에 편승한 것임을 강조했다.
비자신청 전문 대행업체인 ‘비자 가이드사’의 김용희 팀장은 “비자가 한번 거부되면 다음 해가 돼야 재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며 “요즘 방문비자는 거부율이 많이 낮아지고 서류요건만 갖추면 한 달내에 비자가 발급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국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확실한 직장이 없고 집과 상당액의 예금고가 없으면 미국방문은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줄을 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중 ‘원정출산’ 얘기가 나오자 연말 연수를 위해 미리 비자를 신청중이라는 한모(약사)씨는 “원정 출산이 왜 문제냐”며 “그것은 개인의 선택문제로 나는 아이들에게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녀는 또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미국에서 낳고 싶다”고 자신의 희망도 나타냈다.
UC버클리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한 남편 덕에 미국생활을 했다는 4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세 자녀 중 두 아들이 시민권 소지자고, 막내인 딸은 한국 국적자라며 “국적포기 시한 마지막 날 고민 끝에 두 아들의 한국 국적을 포기, 지금은 한국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셈”이라며 “군대에 보낼 수는 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대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벌써 정오를 넘어섰다. 비자 인터뷰 시작 30분을 남겨둔 시간, 줄은 이미 한국일보사 건물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미국으로 가는 ‘티켓’을 받으려는 한국인들의 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서울 김상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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