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로 꼽히는 순복음뉴욕교회의 이번 크리스마스는 다른 해에 비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1975년 12월 20일 창립된 이 교회가 30주년을 맞는 가운데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주일에 창립 30주년 기념예배를 성대하게 드린 이 교회에
서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예수의 생애를 담은 뮤지칼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12월 17일과 18일, 그리고 22일부터 25일까지 이 교회의 예루살렘 대성전에서 공연중인 이 뮤지칼은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세트에 세계적인 뮤지칼 가수들이 출연하는 본격적인 뮤지칼로 종교주의 한계를 넘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백마디 말보다는 직접 시청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고 교회측은 설명한다.
이 교회가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뉴욕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이른바 대형 교회로 성장해온 중심에는 담임목사인 김남수 목사(62)가 있다. 그는 순복음신학교를 나와 1974년 충북 음성군의 한 오지마을에서 전도사로서 개척교회에 시무하던 중 미국인 목사의 초청으로 미국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중 그는 미국에서 한인교인들을 만났고 뉴욕을 들러서 상황을 보니 복음적인 교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교회의 일부로 쓰고 있는 맨하탄 33가 중앙우체국 옆의 미국교회를 빌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목사는 그 당시 여행중이었으므로 한국에 있는 고 최자실 목사에게 교회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목사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로 귀국했다.
그 후 최목사의 2남인 최성광 목사가 뉴욕에 부임, 1975년 12월 20일 교인 3~4명으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날 순복음뉴욕교회의 시작인 것이다.김남수 목사는 귀국 후 한국에서 목회를 하다가 월남에 선교사로 파견됐고 월남이 패망하기 14일 전 태국으로 피난했다가 그 후 독일의 서백림교회에서 시무했다. 그러던 중 뉴욕의 교회에서 김성광 목사가 교인들과 문제가 생겨 교회를 떠나게 되면서 김남수 목사가 순복음뉴욕교회
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1977년 9월 17일이었다.김목사에 따르면 처음 부임했을 때 교인 수가 120명 정도였는데 그 수가 500명, 1,000명, 2,000으로 날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교회가 좁아서 하루 4번이나 예배를 드려야 했고 파킹장도 없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이 3,000명에 이른 1991년 7월 플러싱에 있는 현재의 교회 자리를 구입했고 이곳에 이사한 후 두번이나 건축을 하여 현재 건물 2개
에 건평이 25만 스퀘어피트나 되는 큰 교회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맨하탄에 있는 미국인 교회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주일예배는 맨하탄에서 오전 8시30분, 플러싱에서 오전 11시, 오후 1시30분에 갖고 있다.
순복음뉴욕교회는 미조리주의 스프링필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성회’에 속해 있다.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교회 등 한국의 모든 순복음교회도 하나님의 성회 소속이었으나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도중에 소속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순복음뉴욕교회는 미국 순복음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님의 성회는 전세계에 5,200만명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교단이라고 김목사는 말한다.
뉴욕에 사는 기독교 교인이나 일반 한인들이 순복음뉴욕교회가 크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규모를 보면 놀라게 될 것이다. 현재 교인이 4,200여명인데 1년 예산이 1,000만달러이다. 부목사가 3명, 전도사가 4명이고 장로 50명, 권사 350명, 안수집사 130명, 서리집사 765명이나 된다. 교인 수에
비해 부목사와 전도사의 숫자가 적은 편인 것 같은데 김목사는 모든 교회활동에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앞장서기 때문에 교역자의 수가 많지 않아도 활동이 활발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순복음뉴욕교회 교인들의 교회 사랑은 유난하다. 교회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하다.이렇게 큰 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목사는 목회 방향도 색다르다. 해외선교를 중점적으로 하는데 특별히 학교 교육선교에 힘쓰고 있다.
김목사는 북한 식량구호사업을 위해 5번이나 북한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50여년간 똘똘 뭉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주체사상을 가르쳐 정신무장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구나” 기독교가 어른들만 상대로 전도를 했지, 어린 아이들의 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것을 김목사는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그 후 그는 나라마다 학교를 세워 기독교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학교 선교의 결과 현재 혼두라스에 3개교, 도미니카와 에콰돌에 각각 2개교, 볼리비아, 과테
말라, 케냐에 각각 1개교씩 모두 10개교에서 1만명의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탄자니아와 케냐에서도 학교 설립을 요청해 와서 김목사가 직접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협의를 가졌다고 한다. 이와 함께 순복음뉴욕교회 안에도 5년 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의 정규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김목사는 일찌기 한국에 온 미국선교사들이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2,000여개의 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교육을 한 결과 한국의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민주화운동을 이끈 기독교 지도자들을 육성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목회 성공과 교회 성장에만 힘을 쏟다보니 교육을 소홀히 한 것 같다면서 스스로도 이런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그에게 교회를 이렇게 성장시킨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하나님의 은혜”라고 대답을 한다. 목사로서 이처럼 목회에 성공한 그의 행로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하여 막다른 골목에서 서대문에 있던 순복음교회를 찾았다. 당시만 해도 순복음교회는 일반 기독교에서 이단시하던 때였다. 여기서 그는 교인이 되었고 순복음신학교를 나와 순복음교회 목사가 되었다. 시골 전도사로 있다가 이곳 뉴욕을 여행하게 되었고 뉴욕에서 복음의 터전을 마련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면 큰 은혜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다른 목회철학도 있다. 목회의 리더십에는 다스리는 리더십과 섬기는 리더십이 있는데 그는 철저히 섬기는 리더십이다. 이러한 목회철학에 따라 모든 제직이 섬기는 자세가 되어 이 교회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한 가족같은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가족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삭막해지기 쉬운데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교회들이 성장하면서 분란이 일어나고 분열을 하는 진통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순복음뉴욕교회는 오늘까지 이런 일이 없었으니 자랑이라면 자랑거리가 아니겠느냐고 그는 말한다.김목사는 모든 교회와 교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이기 때문에 협력하여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제 한인사회의 교세가 크게 성장하였으니 교회들이 연합하여 큰 일을 해야 한다는 바램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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