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독자 친구가 있다. 매일 아침 2시간씩 신문을 본다. 남편 출근 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은 즐거운 일과의 시작이다.
남편이 쉬는 날도 그 일과는 빠짐 없다.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신문만 들여다보는 부인이 기분 나빴는지 ‘신문에서 무슨 시험문제 나오느냐?’며 한동안 빈정대던 남편이 요즘은 아내의 박식함을 은근히 자랑한단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불문 상대방을 포옹하는 여성이 있다. 그 남편의 이야기인즉, 혹 떼려다 혹 붙인 것이라고 한다.
아내가 사람을 만날 때 남자 손도 서슴지 않고 잡아 흔드는 것이 질투 나서 ‘화장실에서 소변보고 나오는 남성들 중 절반 이상이 손을 씻지 않는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 악수에서 포옹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남자들의 청결의식이 낮아도 그 정도일까 싶어 정말이냐 되묻자 ‘신문에 그렇게 나왔다’며 철썩 같이 믿는데, 신문쟁이인 내가 고맙게 생각하고 물러서는 수밖에.
지난 7일은 한국에서 제정된 신문의 날이다.
한국일보 고 장기영 사주께서는 신문 제작과 관련, 많은 명언을 남기셨는데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신문은 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
신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이다. 언뜻 보면 역설적인 말 같지만 아무도 이용할 수 없는 신문이어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기울지 않고, 비판하는 용기뿐 아니라 칭찬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불편부당, 정정당당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사주께서는 또 신속 정확한 보도를 역설하셨고 만에 하나, 그런 노력과정에서 피치 못할 오보가 생겼을 때도 숨기지 말고 정정 역시 신속, 정확하게 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하셨다.
인터넷 등장 등으로 신문 구독률이 하향세라고 하지만 그런 전통을 이어가기 때문인지 한국일보 애독자들의 신문 사랑은 오히려 느는 것 같다.
나도 우리 신문에 게재된 지 모르는 기사를 갖고 따지거나 신문이 늦는다고 난리 치는 독자 전화를 받으면 은근히 기쁘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일보를 사랑한다는 소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국장이십니까? 아, 지국장께서는 입춘대길을 한문으로 어떻게 쓰십니까?’ ‘네?’ ‘본지에 입춘대길의 길을 흙 토(土)아래 입 구(口)로 썼는데 그거 틀린 거 아닙니까. 그런 걸 신문에 내면 젊은이들이 그리 알고 쓸 것 아닙니까?’ 뭔지도 모르고 일단 야단을 맞는다.
독자가 지적하는 내용을 찾아보니 농협부산지역 본부가 고객들에게 입춘방을 나누어주는 사진 속의 글씨가 그렇게 되어 있다. 원래 선비 사(士) 아래 입구지만 전문가들이 썼으니 그렇게도 쓰나본데… 며칠 뒤 본지에 게재된 ‘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에 보니 길을 따라 길게 길게 복 들어오라고 그렇게도 쓴다고 한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러나 그 독자도 그 글을 읽었으리라.
이런 전화도 받았다. ‘아니 왜 여태 신문이 안 옵니까? 신문 없으면 아침에 화장실을 못 가는데, 변비 걸리면 책임질 겁니까?’ 그 남성 독자는 화를 내는데 나는 미안하다는 말에 앞서 웃음이 나온다.
내일은 또 어떤 열렬 독자가 어떤 돌발 질문을 할지, 기다려진다.
김현숙 OC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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