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으로 미국의 심장은 캔자스 주 레바논이다. 이 곳에 3,000에이커의 땅에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중년의 농사꾼 랜들 워너(52)가 살고 있다. 그는 밀을 수출한다. 그런데 열심히 땅과 하늘에 의지해 살아온 그에게 요즘 시름거리가 생겼다. 과연 천직으로 생각해 온 농사일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나는 시내를 두루 드라이브 했다. 여러 가지 사람 사는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아들도 이 것을 볼 것이다. 아들이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한결 나을 것이란 마음을 먹을 수 있다.” 워너의 근심은 자신의 전직 가능성 때문이 아니다. 자식이 땅을 버리고 도시로 훌쩍 떠나버릴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 가운데 위치한 농업지역 캔자스 주 레바논
15년간 주민 25% 감소, 대도시로 계속 빠져나가
연료비 증가 타산 안 맞아 내년에 전출 더 늘듯
대학 물 먹은 젊은 세대 귀향 안 해 ‘설상가상’
워너는 농장 인근 레바논에서 글을 배웠다. 그런데 이제 레바논 주민은 하나둘 큰 도시로 빠져나간다. 지난 15년간 인구의 25%가 감소했다. 그리고 기업농이 서서히 들어왔다. 워너는 그야말로 촌놈이다.
일찍 일어나 해질 때까지 열심히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는 일밖에 모른다. 그런데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한 기업농이 기웃거리고 있다. 또 워너는 국제무역이나 정부지원금을 활용한 기업영농에 대해서도 별다른 지식이 없다. 이러한 움직임이 워너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내년에는 농사꾼이 더 줄어들 것으로 워너는 본다. 연료비가 너무 올랐기 때문에 힘들여 농사지어봐야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평생 일궈온 땅과 가업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걱정이 없을 리 없다.
워너의 아들 트레비스는 아버지와 가까운 이웃 아저씨 외에 다른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고 싶어 한다. 예쁜 여자친구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적어도 20마일은 나가야 한다. 밤늦게까지 농토에서 들판에서 일하는 것 말고 다른 재미있는 삶이 있을 것으로 동경을 한다. 푹푹 찌는 여름 무더위를 피해서라도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트레비스는 이런 생각을 털어놓지는 않지만 워너는 아들의 속마음을 읽고 있다. 트레비스는 캔자스 주 레슬링 대표다. 그리고 돼지사육 챔피언이다. 조만간 대학에 간다. 대학에 가면 졸업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지 반신반의다. 맏아들 더스틴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파란색 픽업에 앉아 어머니가 싸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트레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며 살고 싶다. 그러나 이곳은 매일 아버지와 나 뿐이다. 이런 삶은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워너는 저 멀리 들판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들의 이 말을 다행히(?) 듣지 못했다. 일전에 트레비스는 아버지에게 기업농에게 농장을 팔라고 했다. 하지만 트레비스 자신도 아버지가 그 다음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해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답변은 당연히 “노”였다. 아들이 떠나더라도 다른 일꾼을 고용해 땅을 일구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면 땅을 조금씩 팔겠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패턴이 레바논 농부들이 걸어간 길이다.
워너는 부지런하고 검소하다. 일밖에 모른다. 농장 한 귀퉁이에 2층 집을 짓고 산다. 잠잘 때와 밥 먹을 때만 들른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농장 일에 매달린다. “솔직히 말해 단조로운 생활이다.” 워너도 시인했다. 아내는 불만이 더 크다. 남들처럼 시내에 자주 나가 영화도 보고 바람도 쐬고 싶어 하지만 여의치 않아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워너는 자신이 평생 몸담은 일에 후회는 없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면서 살아 온 삶이어서 그렇다. 그는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다. 정직하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워너는 낙태에 반대하고 동성애에 몸서리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공화당 쪽으로 기울게 된다. 실제 공화당에 표를 던졌다.
워너는 손가락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하나님, 가족, 일. 그리고 하나 더 꼽았다. 이 것은 앞의 세 가지를 모두 합친 것이다. 바로 전통 도는 유산이다. 땅을 지키는 농사일을 자식들이 물려받기를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워너는 농부를 아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가장 훌륭한 리더로 칭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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