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전 은행인)
거짓말에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나 행복을 주는 하얀 거짓말과 그와 반대되는 빨간 거짓말이 있다 했던가. 전자에겐 재미 또 시공적으로 소폭이지만 카타르시스의 효력이 대단한 반면 후자는 그와 정반대가 되어 내용 여하를 떠나 용어 자체만 같을 뿐, 거짓말의 후유증은 생사의 갈림길 만큼이나 극명하다. 오죽하면 중국 천하 제일의 재상인 범중엄이 벌써 천년 전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단지 두 글자, 불기(不欺)를 평생 좌우명으로 살아도 도덕군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애비가 둘’이란 말이 고리타분한 말 같지만 아직은 유효하고 영원히 옳은 말일 것이다.
머지않아 뉴욕한인회장 선거가 있을 모양인데 한인 공동체가 발전하려는지 봉사하려는 사람도 많다. ‘돈 놓고 돈 먹기요, 못 먹어도 고’라는 노름판이 아닌 이상 걸맞는 쟁쟁한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동안 현직 이경로 한인회장이 특별히 돋보였던 것은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참신한 선언이었다. 필자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분(타 후보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신선한 충격이어서 참 회장 자격 갖춘 신사라고 감탄했었음을 고백한다.
한 차례 했으니 깨끗이 물러나 다음 사람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지닌 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짓말의 대가(大家)가 이 뉴욕에 탄생했는가 놀라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길이 없다.정든 고국을 떠난 사연들이야 십인십색 미아리 공동묘지 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고국의 더러운 정치판에 넌더리를 내고 떠나온 이들은 식은 죽 먹듯 말을 바꾸는 사람들을 수용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특히 한때 한국의 옷 로비 재판을 비롯해서 각종 게이트의 소송과정은 봄바람에 벚꽃 날리듯 거짓말 콘테스트의 춘추시대였으니 부정과 비리의 모든 악이 정치인들의 거짓말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얀 거짓말도 내 가족, 친지, 이웃이 아니면 조심해야 하거늘 만인을 상대로 하는 공인이 누운 소 올라타듯, 조자룡 헌 칼 쓰듯 쉽게 말을 바꾼다는 것은 그 인격이나 양심을 논하기 전에 사회나 국가에 재앙을 불러올 개연성을 심도있게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이경로씨가 현 임기 중에 이룬 업적이 적지 않고 미진한 것 때문에 한 번 더 하겠다는 것은 순수한 열정의 봉사정신이 됐든, 출세 지향의 야욕이 됐든 탓할 수 업지만 부지런한 요리사가 접시를 깬다는 말도 오로지 훌륭한 요리만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때 깨어진 접시도 상쇄되는 것이지 요리 외적인, 사사로운 목적의식에서 실수한 언행까지 사면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으로 이경로씨를 아끼는 마음에서 감히 권고하건대 말로는 “내가 벌린 일이니 내가 끝마무리 하겠다” 하지만 내심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이나 독선이 만약의 화근이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내가 뛰는 X이면 분명코 내 머리 위로 나는 X이 있다”는 사실만 명심하면 그 인생은 절대로 실패할 수가 없다. 이경로 회장의 현명한 결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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