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국의 최대 화제는 해리 왕자를 이라크에 파견 하느냐 마느냐다. 해리 왕자(22)는 찰스 왕자의 차남이며 다이애나가 낳은 아들이고 세번째 왕위 계승권자다. 해리 왕자는 지난해 샌드 허스트 사관학교를 졸업, 육군 소위로 ‘블루 로열스’ 여단에 배속되어 있다. 그런데 이 ‘블루 로열스’ 여단은 영국군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최정예 부대로 수주 내 이라크로 파견될 예정이다.
군 수뇌들은 고민이다. 해리를 이라크에 파견하자니 테러 목표물이 될 것 같고 파견을 보류하자니 무장 세력을 겁내는 인상을 주어 영국군 정예부대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다.
문제는 해리 왕자다. 그는 “나의 소원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파견되는 것이며 영국을 위해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것”이라고 지난해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요즘 친구들에게 “샌드 허스트 사관학교를 나와 일선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면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이번에 이라크에 파견 안 되면 군에서 제대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 한 모양이다. 군 당국이 해리 왕자를 이라크에 보내되 여단본부 행정장교로 보직을 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어느 신문의 편집인은 “그것은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를 하지 않는 엑스트라나 마찬가지”라고 평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가 있다. 시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noblesse)이 가지는 도덕적 의무(oblige)를 의미한다. 단어 자체는 프랑스어지만 어원은 로마시대 귀족들이 보인 솔선수범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니발을 멸망시킨 명문 스키피오 장군의 집안도 여러 사람의 전사자를 냈다. 로마는 한니발과의 포에니 전쟁에서 13명의 집정관(군사령관)과 수많은 원로원 의원의 아들들을 잃었다.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선제공격했는데도 패전한 것은 영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전쟁이 나면 왕실과 귀족 자녀들이 제일 먼저 일선에 배치해 군의 사기를 올린다.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여왕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가 최전방 헬기 조종사로 싸웠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2차 세계대전 때 왕위권 계승자임에도 수송병으로 근무했고 부군인 필립공도 전투기 조종사로 독일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영국에서는 명문학교 출신일수록 군에 들어가 전방에서 근무한다. 최고 명문이라는 이튼 고등학교 졸업생이 1, 2차 세계대전에서 2,000명이나 전사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왕 조지6세의 동생 켄트 공작도 전사했고 웰링턴 공작도 일선에서 최후를 마쳤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도덕의식을 갖고 솔선수범해야 서민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며 계층간의 대립 의식이 없어지는 법이다. 상류층이 위세만 과시하고 솔선수범이 없을 때 그 사회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힘 있는 놈” “돈 가진 놈”으로 부르게 된다. 이회창씨가 실망을 준 것도 한 명도 아닌 아들 두 명 모두 병역면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한화재벌의 김승연 회장 망신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결핍증 때문이다.
바다물이 썩지 않는 것은 3퍼센트의 소금 때문이라고 한다. 상류층이 소금 역할을 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영국민이 어려울 때일수록 단결하는 것은 상류층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3퍼센트의 소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철 /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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