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실명에서 깨어나 눈이 뜨인 홍드보라 권사(오른쪽)와 원유선씨가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시각장애인의 손발이 돼 봉사하며 살고 있다.
비젼시각장애인센터서 자원봉사
홍드보라 권사·원유선씨
홍드보라(65)권사와 원유선(43)씨는 ‘비젼시각장애인센터’에서 온갖 봉사를 다 한다. 홍 권사는 찬양으로 바쁘다. 원씨는 설거지부터 쓰레기 버리기까지 도맡아 한다. 전혀 못 하던 하모니카(홍 권사)와 닭도리탕(원씨)도 배워서 봉사할 정도다.
두 사람이 이렇게 열심인 이유는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알아주는 것’과 같다. 눈이 멀어봤기에 시각장애인의 아픔을 잘 아는 것이다. 아직도 옛날처럼 정상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보이기에 시각장애인의 손발이 되겠다고 자원하고 있다.
4·29폭동-술 중독… 가게 잃고 실명
병원서도 “치료 불가능”포기
시각장애인과 생활하며 시력 되찾아
“기쁨·감사의 마음으로 봉사의 삶”
“정말 기적으로 살아가요.”(홍 권사)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사는 겁니다.”(원씨)
홍 권사는 4·29폭동의 충격으로 안 보이기 시작했다. 다운타운에서 운영하던 주얼리샵을 다 털리고 난 뒤 회생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1995년 파산했다. 서서히 흐려져 가던 눈은 1997년 자녀 얼굴도 보지 못할 정도가 됐다.
원씨는 술 때문에 망가진 경우다. 마흔이 가까워질 무렵 ‘지금껏 이뤄놓은 게 뭐가 있나’는 강박관념에 맨 정신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혼자 평일에는 소주 6∼7병, 주말이면 10병을 들이켰다. 그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왼눈이 침침해지더니 보름만에 캄캄해졌다. 곧 이어 오른쪽도 보이지 않게 됐다. 소유하던 봉제공장은 헐값인 1만달러에 팔렸다.
두 사람은 “망막이 완전히 뭉쳐 있어 회복이 불가능하다”(홍 권사)와 “더 이상 병원에 오지 마세요”라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치료는 중단된 지 오래다. 홍 권사는 “재산까지 다 가져가시더니 눈까지 가져가십니까”라고 절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홍 권사가 앞에 앉은 사람 얼굴에 있는 점을 볼 수 있고, 원씨는 형체가 보여 부딪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아무런 외부 도움도 받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두 사람은 비젼센터에 나온 게 치료(물론 의학적 의미는 아니다)의 전부라고 말한다. 홍 권사는 지인 소개로 2001년 비젼센터의 추영수 목사를 알게 됐고, 원씨는 올해 초 소셜워커의 추천으로 비젼센터를 나왔다. 그 전까지는 세상을 등진 두 사람이었다.
“처음에 선천성 시각장애인이 희희낙락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됐어요. 보이지도 않는데 뭐가 저리 좋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따라 웃다보니 내가 왜 죽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어요.”(홍 권사)
“보이다가 갑자기 안 보이니 분노가 막 쌓이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의사도 원인을 모른다면 하나님이 바로 저를 데려갈 수도 있었는데 한번 더 기회를 주시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바뀌니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혼란의 삶이었는데 지금은 더 낫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게 문제죠.”(원씨)
이제 두 사람은 즐겁게 살고 있다. 예전과 똑같지는 않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으니 ‘기쁨 충만’이다. 전혀 안 보이는 다른 시각장애인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나보다 못한 분이 더 많잖아요. 잘 안 보여도 저는 몸이라도 건강하죠. 눈이 잘 보일 때는 링거도 많이 맞았고 누워서 지낸 적도 많아요. 내것 다 가져가시니 건강을 주시고 봉사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하며 삽니다.”(홍 권사)
“많은 중도 실명자들이 집에 갇혀서 스스로를 옥죄고 살아요. 그런데 부닥치면서 살아야 무슨 병이라도 빨리 나을 수 있어요. 하늘이 이렇게 푸르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원씨)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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