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아”
방북 최경주 장로 깜짝 파티에 감격
“북한 사람 직접 접하니 너무 친절”
최경주 장로(메릴랜드 거주)에게 2007년 9월2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살아서는 다시 못 밟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향(평안남도 순천)도 찾았는데, 북녘에서 칠순 생일상까지 받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억’은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북한 칠골교회에서 예배도 드렸고, 칠골교회를 담임하는 황민영 목사의 축복 기도도 받았다.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최경주 장로가 북한에서 칠순 생일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우연처럼 다가왔다. 미주우리민족교류협회와 US선교사관학교가 모집한 ‘통일을 위한 발걸음, 평화 대장정 북녘땅 밟기 운동’의 1차 방문단은 원래 8월25∼30일에 북한에 들어가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이 8월28∼30일 평양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발표되며 방북 날짜가 8월30일∼9월4일로 연기됐다. 방문단 신청할 때 칠순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치고는 모든 게 계획된 것처럼 맞아 들어갔다.
방문단을 이끈 김다니엘 목사가 신상 기록을 보다 최 장로의 생일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안내원에게 칠순 생일상을 차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묵고 있던 해방산 호텔에서 아침에 ‘깜짝 파티’를 열어 최 장로를 놀래어 주었다.
최 장로는 “정말 생각도 못 하던 일이었는데, 그런 환대를 받았다니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북한에서는 생일에도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며, 특별히 나를 위해 상을 차려줬다”고 말했다.
파티는 미역국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호텔 직원들이 케이크도 준비했고, 노래도 불러줬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칠순에 대해 최 장로는 “그저 감개가 무량했다”고 말한다.
최 장로의 아내인 최청자 권사는 “남편이 더 늙어 걷기도 힘들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자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생일상까지 받아 너무 감동했다”며 “사실 떠나기 전에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접하고 보니 북한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 좋았다”고 말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고향에 직접 가보지는 못한 것이라고. 그나마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가는 길목에 순천이 있어 도로 표지판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최경주-청자 부부가 70세 생일이었던 9월2일 북한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최 장로는 “고향 들어가는 길은 6·25전쟁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며 “논도 그대로였다”고 말한다. 북한에 아버지만을 홀로 남겨둔 채 어머니와 형 둘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던 아픈 기억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고.
1971년 이민 와 한 회사(트럭 렌털 업계)에서만 37년 일하며 은퇴한 최 장로는 “하나님이 고향 땅을 보여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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