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기수’ 지선 스님
권력 탐하는 자는 수행의 길 벗어나
한국 민주화 운동에 큰 발자국을 남긴 지선 스님(백양사 유나)이 LA를 찾았다. ‘선과 현대사회’ 강연을 위해서다. 하와이로 떠나기 전 스님을 만나 갈수록 더 큰 조명을 받는 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신정아 스캔들’에 불교계도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수행하겠다고 출가한 스님들이 왜 문제를 일으키나요?
“그런 분들은 진정한 수행자가 아닙니다. 세상 욕망을 짊어지고 절에 앉아있는 것뿐이죠. 승려답지 못한 사람들이 야망 성취라는 속물 근성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스님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운동과 정치는 다른데, 정치를 운동 방식으로 한 게 문제죠. 운동했을 때 초심을 잃고, 욕망의 노예가 된 것도 가슴 아픕니다. 운동가는 수행자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했을 때 문제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386세대는 경륜이 부족해 야망의 노예가 되기 쉽죠.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정부의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욕망 없는 인간이 가능한가요?
“욕망을 없애는 게 바로 수행입니다. 욕망에서 고통이 발생하니, 세상을 고해라고 하지 않나요. 중요한 건 욕망은 빗자루로 쓸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욕망은 실체가 없어 영원하지 않는 걸 깨닫는 겁니다. 욕망의 무상함을 알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즉 세상의 무상과 인생의 허무를 느끼자는 겁니다.”
― 인생의 허무를 말씀하셨는데, 그럼 허무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전혀 다릅니다. 허무주의는 세상은 그저 그렇고 그러니 그냥 즐기며 살자는 주장이죠. 그런데 불교는 욕망이 부질없는 것이니 착하게, 건설적으로 살자고 계도하는 겁니다.”
― 그렇다면 선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선은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올바른 생각이란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하고 분별하기 이전에 허공처럼 밝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 밝음이 흐려지는 건 오욕칠정(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감정) 탓이죠. 선을 통해 영원한 것과, 선악과, 진실과 거짓, 영혼이 있는지, 우주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 선은 명상, 사색, 묵상과 어떻게 다른가요?
“명상은 복잡한 세상에서 선악의 시비를 가려내는 과정입니다. 영혼과 정신을 맑게 하는 순수한 행위로 몸과 마음의 웰빙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선은 거기서 더 나아가 수행의 일환으로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깨달으려고 하는 노력이죠.”
― 현대에 왜 선이 더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현대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행복지수는 더 커지지 않았지요. 과거가 오히려 덜 복잡하고, 자연과 화목했고, 인간성이 살아있었죠. 지금은 지식·정보의 시대라지만 오히려 그것에 쫓기며 삽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정체성과 인간성을 상실하고 소외감과 불안에 떨어요. 결국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죠. 돈으로도 안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편리하고 윤택한 것만으로도 안 되니, 자연히 자기 본성에 대한 그리움이 발동하죠. 결국 참진리를 향해 선을 추구하게 되는 거죠.”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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