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진정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보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겸손하고 온유하다고 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겸손과 온유가 신앙과 성품의 목표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좀 바보스러워져야 한다. 성경 속 신앙의 대가들이 그러했듯이.
노아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산꼭대기에서 몇 십년을 미친 사람 취급당하며 방주를 지을 정도로 바보였다. 아브라함은 사막지역에서 물도 모자라는 판에 조카에게 더 기름지고 좋은 땅을 양보할 정도로 바보였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시샘하는지도 모르고 천방지축 찾아갔다가 그들에게 잡혀 종으로 팔려버리는 바보였다.
베드로는 “나를 따르라” 한 마디에 전 재산과 모든 인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를 정도로 바보였다. 바울은 보증된 출세의 길을 버리고 험난한 선교와 순교의 길을 택할 정도로 바보였다. 예수님 역시 천국의 권세를 버리고 천한 인간으로 태어나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할 정도로 바보 중에 바보였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런 바보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이다.
우주선이 외계생물을 찾아 태양계를 누비는 이 21세기에, 몇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말씀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은 바보들이다. 옆의 차가 신호도 안주고 갑자기 끼어 들어와도, “허어, 뭔가 급한 일이 있나보다”하고 그 흔한 욕 한번 안 하는 신앙인들은 바보들이다.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을 정식 허가해 주려고 하는 정부를 향해 낙태는 살인이라 울부짖는 신앙인들은 바보들이다.
모처럼 쉬는 금쪽같은 휴식을 잔진 반납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신앙인들은 바보들이다. 멋들어진 유럽산 럭서리 자동차를 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달래며 평범한 일제나 국산차를 타고 다니면서 매달 아프리카의 배고픈 어린이들을 위해 성금을 보내는 신앙인들은 바보들이다.
그러나 가장 바보스러운 일은 정작 이런 바보 같은 신앙인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똑똑하고, 말 잘하고, 리더십 뛰어나고, 처세에 능수능란한 교인들은 많아도, 어리숙하게 온유하고 바보스럽게 겸손한 신앙인들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보가 되자고 말하는 것이 바보같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고 바보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따르는 바보들이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주님을 닮고 싶은 신앙인이라면, 바보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도 목사이기 전에 바보가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손해를 좀 보자. 희생을 좀 해보자. 작은 예수, 참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이 용 욱
(목사·하나크리스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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