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시내버스를 몇번 타보면 이번 선거에서 왜 서울시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는지 이해가 간다. 서울 시내버스는 교통마비의 주범이던 옛날의 그 버스가 아니다. 버스노선이 따로 있어 택시보다 더 빠르다.
더구나 교통카드를 하나만 사면 지하철과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고 갈아탈 경우 조금만 돈을 더 내면 된다. 서울 시내 어디든지 쉽게, 빠르게 그리고 저렴한 교통비로 갈 수 있다. 기자는 서울에서 한 달 머무는 동안 줄곧 지하철과 버스를 적절히 바꿔 타며 돌아다녔는데 그 편리함에 놀랐다. 또 버스가 과속하면 자동장치에 의해 “운전기사님, 속도를 줄이십시오”라는 애교 있는 여성의 녹음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느 날 등산 가느라 새벽 6시에 버스를 탔을 때였다. 버스가 과속하자 “운전기사님, 속도를 줄이십시오”라는 녹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벽이라 거리에 차가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운전기사는 속도를 더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운전기사, 천천히 가요”라고 여성의 녹음 목소리가 바뀌었다. “님”자가 빠진 것이다. “운전기사, 천천히 가요”가 거의 10분 동안이나 되풀이 되는데도 기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자 아가씨의 녹음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변하면서 “야! 운전기사, 천천히 가라니까!”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의 꾸짖는 목소리는 계속 버스 내에 울려 퍼지고 버스는 미친 듯이 과속으로 달리니 분위기가 긴장돼 승객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운전기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나는 참다못해 “아저씨, 좀 천천히 갑시다”라고 한마디 했더니 불쾌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속도를 늦추었다. “다른 손님들은 가만히 있는데 괜히 잘난 척하네”하는 표정이다.
기자가 정말 놀란 것은 30여명의 승객 중에 아무도 운전기사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운전기사가 어느 선을 한참 넘었는데도 못 본 척하고 있으니 불법에 동조한 셈이다. 운전기사나 승객 모두 도덕의식이 약한 것이다. 미국 같으면 승객 중 누가 당장 핸드폰으로 경찰 순찰차를 불렀을 것이다.
사람들이 정은 많은데 사회 정의가 약한 것이 한국이다. 사회 전체가 목적 달성을 서두르는 조바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도덕을 당연시 한다.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기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을 받아 구속되고 유명 대학 총장 부인이 입학을 둘러싸고 돈을 받아 처벌 받은 사건 그리고 삼성 비자금 사건이다. 한국이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는 보수-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도덕성 불감증 유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고 사람마다 선진화를 외치는데 도덕적으로는 아직도 후진국이다. 피라밋을 밑에서부터 쌓지 않고 위에서부터 쌓는 식이어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면 도덕적 기반이 튼튼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육체적 웰빙에만 관심 있고 정신적 웰빙에는 너무 무관심하다.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의 균형이 깨져 있다.
국가의 재산은 경제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도덕 수준도 국가 재산이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여행해 보면 도덕 수준의 차이가 곧 국가 수준의 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1세기는 명령이 아니라 조직원이 스스로 움직여야 성공하는 시대다. 한국이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혁명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 도덕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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