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희로애락을 겪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스로 낮은 데로 내려앉을수록 상처받는 일이 그만큼 적어진다.
밑바닥은 가장 낮은 곳이다. 그래서 가장 낮은 바닥에 가까울수록 사람은 편안해진다.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편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 있는 것이 편안하다. 더 이상 넘어질 일이 없어서일까. 지난해 일본에서 공직에 있던 현직 농수산부 장관이 자살했다. 정치자금 문제로 수사가 진행돼 오자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스스로 목을 맸다. 장관이라는 높은 관직에서 쫓겨날 불명예의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다. 평지에서 넘어지면 엉덩방아를 찧어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산 계곡에서 실족하면 목이 부러지거나 척추를 다쳐 꼼짝할 수 없게 된다.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 보통 사람은 실수하더라도 표가 나지도 않고 쉽게 원상복귀 할 수 있다. 그러나 크게 성공한 사람일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사회적으로 얻은 명성이 높기에, 명성을 잃어버릴 때 얻게 되는 불명예의 수치가 크다. 가끔 보도되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동도 알고 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20세기의 저명한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의 삶은 성공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젊은 시절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30권이 넘는 책을 써서 유명인이 된 헨리 나우웬은 항상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만나고 싶어 하는 명성을 지녔다.
그런데 그 분이 어느날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이제 교수직을 포기하고 앞으로 정신박약아들을 돌보며 일생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 분을 아끼는 동료와 제자들이 놀라 설득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당시 그 분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간 내가 살아온 오르막 인생길에서는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 분은 마침내 인생의 말년을 캐나다의 라르시 공동체에 속한 정박아 시설에서 장애인들의 대소변, 식사, 목욕 등을 도와주는 구질구질한 일을 하며 낮은 곳에서 봉사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 분이 바로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의 저자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다.
왜 그 분은 낮은 곳에서 살기를 원했을까. 그 분 말대로 낮은 곳에 가야 쉽사리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가장 낮은 곳으로 찾아 오셨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참된 겸손은 ‘낮은 데’로 임하는 착한 마음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된다. 하느님을 만나고 사람들에게서 환영받으면, 그 때 비로소 우리 삶의 자리에 행복의 꽃이 피어나는 것 아닐까.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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