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라리경의 장례식이 22일 뉴질랜드에서 국장으로 거행되는 장면이 CNN 뉴스로 방영되었다. 관 위에는 그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때 사용한 피켈과 히말라야의 셰르파들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주는 가타(목도리)가 놓여 있었다.
유명한 산악인은 많지만 존경받는 산악인은 드물다.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관계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질투와 욕심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세계가 숨어 있다. 팀 중에서 누가 먼저 올라가느냐를 둘러싸고 항상 논란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하물며 에베레스트 첫 정상 정복에서야 오죽했을까.
힐라리는 주력팀이 실패해 올라가게 된 두 번째 공격팀이었다. 역사적인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1953년 5월29일) 현장사진도 힐라리가 아니라 셰르파 텐징이다. 텐징이 사진 찍을 줄 몰라 힐라리가 직접 찍었기 때문에 텐징이 그렇게 유명해진 것이다.
만사에서 힐라리는 겸손을 행동으로 보인 산악인이다.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정상에 발을 디뎠느냐”는 질문에 그는 항상 “텐징이 먼저”라며 겸손을 보였다(사실은 힐라리가 10피트 정도 먼저 도착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또 에베레스트 정복을 이야기할 때는 “내가”가 아니라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인간한계를 극복한 기록으로 말하면 14좌를 정복하고 무산소, 단독등반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라닌홀트 메스너(이탈리아)가 힐라리보다 더 위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악인들은 메스너를 ‘위대한 영웅’으로 꼽지 않는다. 메스너는 억만장자로 이탈리아의 주발 캐슬이라는 성에 살고 있으며 유럽 연방의원이고 TV 해설가다. 최근에는 그의 동료들이 “메스너는 욕심을 너무 부려 결국 동생을 산에서 잃었다”고 비난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라 있고 팀 멤버였던 친구의 아내를 뺏었다 하여 비난이 자자하다.
힐라리가 존경할 만한 산악인의 표본으로 꼽히는 이유는 그가 유명세를 이용하여 메스너처럼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마다하고 에베레스트의 셰르파족들을 위한 교육에 일평생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에베레스트에 가보면 남체, 굼중 등 산속 마을에 학교가 30여개나 되고 병원이 2개나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모두 힐라리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에서 모은 돈으로 세운 것이다.
1997년 한국일보 초청으로 서울에 왔을 때 그는 강연에서 “나는 에베레스트 때문에 유명해졌다. 에베레스트에 보답해야 한다. 그 보답은 에베레스트에 학교를 많이 세우는 일이다. 나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때보다 셰르파들의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는 것을 볼 때 더 희열을 느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에베레스트는 그에게 영광만 안겨다 준 것이 아니다. 그의 일생 최고의 불행도 안겨다 주었다. 에베레스트 산속에서 일하는 그를 찾아오다가 부인과 딸이 경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당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다. 이것이 메스너와 힐라리의 차이점이다. 힐라리는 성공이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달은 산악인이다. 그는 “하늘이 나를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한 것은 셰르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힐라리는 정말 뉴질랜드가 자랑할 만한 ‘위대한 영웅’이다.
이철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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