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북한 고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더러 전화로 ‘북한에 다녀 보니까 사정이 어떻더냐’고 물어 옵니다. 주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한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옛날 주소를 알려 줄 테니 혹시 북한에 들어가는 기회에 가족의 근황을 알아 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이런 때 저는 참 가슴이 답답해 오고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민족은 어쩌다가 남북으로 헤어져 살아야 하고, 게다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왜 그리운 사람과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심지어 전화나 편지마저 하지 못한 채, 50년, 60년을 헤어져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제 자신은 북한에 아무 연고가 없고, 가족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인들, 우리 이웃들 중 북한에 부모 형제와 자녀를 두고 만나지 못한 채, 한맺힌 생애를 살아오는 분들이 어디 한 두 분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중 누군들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궁금증을 그건 ‘당신네 사정’이라고 치부하고 나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넘어가겠습니까?
하지만,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런 일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제가 고아들을 위해 북한을 드나드는 일이 있지만, 남미나 아프리카에 간 것처럼, 그 기회에 북한의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북한은 공항이나 국경의 세관 수속을 마치고 나가서 스스로 택시를 타거나 시내버스를 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제 경우, 북한에 들어가면서부터 관계기관에서 나온 지도원과 운전기사가 저를 안내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돕고 있는 몇 곳의 고아원에 가서 고아들의 상태와 시설을 둘러보는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북한에 머무는 3~4일간, 여유시간이 있다고 해서 호텔 밖으로 나가 시내를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더구나 함께 있는 지도원에게 누구의 근황을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부탁해도 허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연히 지도원의 입장만 난처하게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아들을 돕는 일로 북한에 입국하였으면 그 목적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외의 일로 북한 관리들을 난처하게 하는 일을 하거나, 당국의 규정을 어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가족의 안부를 물어오는 분들에게 저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고아들을 도우려고 가는 것일 뿐, 그 외의 일은 전혀 할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난 날 밤, 저는 대개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것은 아주 정직한 대답이지만, 왠지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조여 옵니다. 마치 내가 고향에 다녀왔는데 고향에 가지 못한 절친한 친구가 자기 부모가 어떻게 계시더냐고 안부를 물을 때, 나는 자네 부모를 뵙지 못해 전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내가 무척이나 몰인정하고 예의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이 현재 국제사회를 향해 문을 열어나가는 가운데 있다고 봅니다. 오늘 세계 각국들은 상호 협조하면서도 저마다 자기 국민들을 위해서 무한 경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북한만 외톨이로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문이 열리면 곧 우리 이산가족들도 부모 형제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비록 오늘은 우리가 헤어져 있지만, 머지않아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진 분단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동력인 것입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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