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슈밋에 대하여’(About Schmidt)라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할리웃 최고의 연기파 배우의 명연기와 잔잔한 스토리 구성으로 진한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했던 영화였습니다.
66세 나이로 평생 몸담았던 보험회사를 은퇴하고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는 슈밋(잭 니콜슨)은 함께 늙어가는 아내 구박하기, 곧 사위가 될 딸의 남자친구 무시하기, 앉아서 소변보기 등의 행동을 취미처럼 즐기는 괴팍한 노인네입니다.
어느 날 자선단체의 ‘아동 결연 TV 광고’를 보게 된 그는 탄자니아에 사는 6세의 고아 소년 ‘엔두구’와 결연후원을 맺게 되고, 그 아이에게 편지 쓰기를 시작합니다. 편지 내용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아내의 유품 속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주고받은 비밀 연애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또 하나뿐인 외동딸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빠를 외면하고 집을 나가 버립니다. 슈밋이 느끼는 배신감과 슬픔, 인생의 공허함은 극에 다다릅니다.
이때 탄자니아의 엔두구에게서 뜻하지 않은 편지와 그림이 도착합니다. 편지에는 슈밋이 보낸 모든 편지를 잘 읽고 있으며, 자신은 항상 슈밋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과 슈밋과 엔두구 자신이 태양 아래서 손을 잡고 서있는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슈밋은 그 그림을 보며 오열을 터뜨립니다.
전혀 뜻밖의 위로와 감동이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외로움의 뇌관을 터뜨린 것이겠지요. 슈밋은 인생의 마지막 목표를 딸의 결혼을 저지하는 것으로 정하고 딸이 사는 도시로 가서 설득과 회유를 하지만 결국 허락을 하게 되고, 결혼식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고민의 실체를 깨닫게 된 그는 ‘엔두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은 정말 하찮은 존재였다는 것,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무기력한 존재였다는 것,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등 인생에 대한 짙은 회한을 담담히 편지에 담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엔두구에게 짧지만 많은 생각이 담긴 당부로 편지가 마무리되고, 영화는 끝납니다. “엔두구야 ! 너는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좋겠구나.”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자신을 실패한 인생으로 인식한 황혼의 슈밋은 바로 장차 내가 맞이할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느끼게 하여 앞으로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영화와 슈밋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보내는 77센트의 후원금, 매일 보내는 편지, 이것이 탄자니아의 고아 소년 엔두구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 것인지 그는 미처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일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그 아이를 통해 한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20여 년의 월드비전 경험을 통해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수많은 슈밋씨에게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 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아니 절대 간과하지 마십시오. 한 아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소망을 담아 이 영화의 속편과 그 영화 속의 슈밋씨를 상상해 봅니다. 엔두구와의 이어지는 편지를 통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고, 탄자니아의 넓은 평원 위, 붉은 태양 아래서 엔두구와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슈밋의 모습을 말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아시아후원개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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