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으로 이주공동체는 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되어 왔다.
서구의 역사 신화들에서 이러한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도리스인들은 고향인 중부유럽을 떠나 그리스에서 헬라 문명을 만들었고, 패배한 트로이를 탈출한 아이네아스과 그의 동족들은 이탈리아에서 로마 문명을 형성하였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탈출한 청교도 역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찬란한 미국 문명을 만들고 있음을 우리가 잘 보고 있다.
이주를 할 때에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과거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최대의 장점이 있다. 독일인 막스 베버와 프랑스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을 부러워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이 사고방식에 의존해 단단히 굳어져 있는 지배구조를 이주민 사회는 가지지 않아도 된다. 수 백 년이 지나 새로운 기득권구조가 형성되기 전에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사회 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고향을 떠나 힘든 삶을 영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신의 은총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미주의 한인들, 특히 한인 교회들은 이주민에게 부여하는 신의 은총을 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수많은 분석과 훌륭한 논평들이 제출되어 있기 때문에 어설픈 요약은 삼가고 싶다. 단지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의 핵심에 이주민의 이중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고향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졌던 출향의식과 객지에 와서 고향을 그리는 귀향의식이 일정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충돌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유롭고 풍요한 땅에 와서 그토록 구태의연한 한국식 교회생활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미주 한인 교회가 융성하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 아쉬운 일이지만, 현재대로라면 미주 한인 교회의 몰락은 시간의 문제라고 본다. 지금까지 교회는 한인 이민 공동체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미주 도착에서 정착까지 아마 교회 신세를 지지 않은 이민자들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어느 이민공동체 보다 교회 중심의 삶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제 젊은 지도자들은 떠나고 신도들은 교회의 과도한 요구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민 교회들조차 한국 교회식의 권위주의, 성장주의, 근본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병을 고치지 않으면 현재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 교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쇠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기회는 있다. 특히 미국 사회가 이민 초기 사회의 장점을 상실하고 기득권층 중심의 사회로 재편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전후에 누려오던 국제적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매개의 변증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 초기의 자유로운 다원적 공동체라는 이상을 미주 한인 사회가 재현할 수 있다면 미주 한인들은 미국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의 공동체성을 미국인들의 다원성과 잘 결합하므로 이룩할 수 있다. 한인 교회는 이러한 자유로운 다원적 공동체를 만드는 제도적 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자면 한인 교회는 한국식의 권위주의, 근본주의, 성장주의 신학을 버려야 한다. 자유롭고 인애의 모습이 넘치는 기독교 공동체의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백 종 국 (UCLA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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