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갔다가 연극을 한편 보았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서울에서 급히 고향으로 내려온 아들은 장손이다. 일가친척들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 장례순서가 이어지는 동안 크리스천이 된 아들은 망자를 위로하며 저승길로 보내는 의식들이 못마땅해 창밖만 내다본다. 이때 문중 어른들이 그를 냅다 꾸짖는다. “저 녀석은 버린 자식이여! 논밭 팔아서 서울 유학 보내놨더니 교회나 다닌다구 싸돌아댕기구! 교회가 밥 멕여 주더냐? 교회가 너 헌티 밥 멕여 주더냐구!” 대사에 교회 얘기가 나오자 소극장을 빈자리 없이 가득 메운 관객들이 휘릭휘릭 휘파람까지 불며 웃어댔다.
어릴 적 친구 하나는 나를 따라 교회에 잠깐 다녔다. 한 번은 내가 그 집에 가서 “아무개야! 교회 가자!” 하고 불렀더니 장지문이 드르륵 열리며 호랑이 아버님이 호통을 치셨다. “교회 가믄 예수가 돈 주냐? 나쁜 넘덜! 돈까지 갖다 바치는 데를 왜 가자고 꼬드겨?” 아마도 헌금을 말씀하신 모양이다. 친구가 옆방 창문에서 손짓으로 나에게 가라는 시늉을 보냈다. 그 친구는 지금 장로님이 되었고 아버님도 임종 전 주님을 영접하였다 한다.
교회가 밥을 먹여주나, 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입니다. 교회는(주님은) 나에게 밥만 먹인 것이 아니라 일용할 모든 양식과 넘치도록 큰 은혜를 모두 부어주었습니다(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내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아, 네네,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가 봅니다. 저도 시간이 나면 한번 가볼 텐데 워낙 바빠서요…. 애들 시집 장가나 보내놓구 한 번 가든지 하겠습니다.”
이 대사는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과 똑같다. “앗! 선생님! 제가 치과에 한번 가야 되는데요.” 꼭 한번 오겠다던 사람들도 여간해서는 자발적으로 치과에 오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다가 어느 날 펄펄 뛰게 아파지거나 진통제로도 낫지 않는 고통의 긴 밤을 새우고서야 달려 나온다. 바쁜 일들이 좀 안정되면 교회에 한번 나가야지요 하고 내게 인사하는 분들도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에 직면해 보기 전에 ‘교회 갑시다’ 하고 나서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님을 만나던 그 날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씻겨진 나의 죄에 대하여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 된 나를 다시 살리신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도 울 수 있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러니 그동안 나를 먹여 살린 것은 알량한 기술과 지식과 고군분투가 아니라 전적으로 교회 덕분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 갔더니 모인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치과의사가 돈을 좀 버는 줄 알았는데 내가 타고 간 자동차가 7~8년이 넘은 고물이라는 것이다. 아니다. 그 차는 트렁크가 넓어서 멕시코 선교 갈 때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집을 좀 번듯하게 꾸미지 아직도 구식 부엌에서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고 한다. 아니다. 이 좁고 낡은 부엌에서 그동안 수많은 구역모임과 성경공부 밥상을 차려냈다. 아이들을 명문 사립고에 보내야 교육이 되지 어찌 그 학교에 보냈냐고 한다. 아니다. 우리 애들 다니는 크리스천 스쿨은 남을 이기는 사람 되게 하지 않고 돕는 사람 되게 하는 학교다. 백번 물어도 바뀌지 않는 대답, “그렇다. 교회가 밥 먹여준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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