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 인근 파커에 자리 잡은 대형 주택.
개스 값이 오르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덴버 도심의 콘도.
직장에서 먼 집일수록 가격 하락폭 커
장기적으로 교외지역 슬럼화 우려도
유가가 치솟으며 미국의 교외 주택 생활이 위협받고 있다. 덴버 인근 싱잉힐스 로드에 있는 2층 주택에 살고 있는 필 보일 가족은 도심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지난 50년간 미국인들을 교외로 내몬 넒은 공간과 조용함이 좋기는 하다. 거실 천장은 2층 높이고 뒷마당에는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 포치에서는 고원의 잡목부터 멀리 로키산맥 봉우리까지 내다보인다. 그러나 이런 교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덴버 남쪽에 있는 하이텍 직장까지 출퇴근하는데 보일 부부는 한 시간 가까이 써야 한다. 개스 가격이 갤런 당 4달러 하는 요즘 보일은 디젤 픽업 트럭 탱크를 채우는데 121달러를 쓴다. 지난 3월 넓은 집 난방비만 566달러를 썼다. 5년 전의 2배가 넘는다.
도심으로 돌아가기는 싫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멀리 출퇴근 할 필요가 없는 작은 집에 사는 것을 생각 중이다. 전에는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다’였는데 이제는 ‘출퇴근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든다’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한다.
전국적으로 고유가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갈 것이란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높은 기름 값이 수십년간 계속돼 온 도심으로부터의 이동이라는 트렌드를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심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주택 경기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애틀란타, 샌프란시스코, 미니애폴리스 등지에서 도심에서 먼 지역일수록 집 값이 빨리 떨어지고 있다. 덴버의 경우 도심 집 값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올랐다. 그러다 마지막 석 달 동안 5%가 떨어졌다. 그러나 교외 지역 집 값은 2006년 중반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마지막 석 달에는 7%나 하락했다.
모기지 융자부터 지나친 주택 신축에 이르기까지 미 부동산 경기 하락은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외 지역 집 값이 많이 떨어지는 주 요인은 고유가로 보고 있다. 콜드웰 뱅커 부동산 중개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택 구입 희망자의 3/4가 고유가 때문에 도심에 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우아해 보이는 교외의 대형 주택은 60~70년대 도심처럼 가난과 범죄가 들끓는 슬럼으로 변할 것”이라고 도심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라인버거는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컨설팅 회사인 임프레사의 조 코트라이트는 “교외로의 조류가 서서히 빠지고 있다”며 “과거 미국인들은 교외를 선호했으나 이제는 도심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시카고와 LA, 피츠버그, 포틀랜드, 탬파의 경우 도심 집 값이 교외보다 훨씬 덜 떨어졌다. 도심에서 먼 지역일수록 사정이 더 나빴다. 2003년 교외에 사는 미국 가정은 평균 연 1,422달러를 개스 값으로 썼다. 올해 4월 개스 값이 갤런 당 3달러 60센트가 되자 지출 비용은 3,196달러가 됐다. 5년 사이에 2배가 된 것이다. 지난 3월 미국인들은 전년에 비해 110억 마일을 덜 달렸다. 이는 연방 고속 도로국이 1942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 폭의 하락이다.
기름 값이 오르기 전부터 환경 보호론자들은 교외 주택은 땅과 에너지, 세금의 낭비라고 주장해왔다. 버지니아에서 가주에 이르기까지 주 정부들은 교외에 길을 놓고 학교를 짓는데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도심 시설을 관리하는 것은 등한시했다. 많은 주정부가 이제는 다운타운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프리웨이를 따라 샤핑몰과 오피스팍이 널려 있는 덴버의 경우 지난 10년간 도심은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지난 4년간 61억 달러를 들여 통근 열차 시스템을 마련, 도심에 차 없이 올 수 있게 하자 역 주변 콘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콜로라도 록키스가 있는 쿠어스 필드 야구장 주변은 한 때 슬럼가였으나 이제는 식당과 맥주 집이 들어선 멋진 다운타운으로 변했다. 플랫 강가를 따라 세워진 현대식 콘도는 사람들이 몰리며 값도 오르고 있다. 교외의 집을 팔고 다운타운으로 이사온 팀 벌리는 “이곳은 도심에 사는 것이 재미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자기 집에서 걸어서 록키스 경기를 보러 간다.
덴버 시장인 존 히큰루퍼는 4달러 개스 값이 도심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시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도심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스 스테이션에서 쓰는 돈이 많아지면 모기지 낼 돈은 없게 된다. 무디스의 수석 경제학자인 마크 잰디는 개스 값이 2달러에서 4달러가 되면 하루 25마일씩 달리는 교외 통근자의 지출 경비는 50달러가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집을 살 때 개스 값을 계산해야 한다”며 “외각 지역 주택가는 폭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자벳은 도심 근교에 있는 전형적인 교회 주택 타운이다. 3자녀의 어머니인 메간 워너(39)는 5년 전 덴버 인근 도심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왔다. 남편과 함께 대지 1.5 에이커 넓이의 큰집을 샀다. 남편은 40분 차를 몰고 출근해야 했지만 당시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 때는 혼다 미니밴 개스 탱크를 채우는데 30달러면 됐지만 이제는 50달러를 내야 한다. 샤핑몰도 아이들 댄스 레슨에 맞춰 가며 교통비를 절약하고 있다. 아직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르다. 덴버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화니타 존슨과 남편은 도심에서 30년간 살다 지난 8월 이곳으로 이사왔다. 4 베드룸 주택을 41만5,000달러에 구입했다. 작년 겨울 난방비만 3,000달러가 나오자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고 싶지만 지금 팔면 모두 날리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주위에 팔려고 내놓은 집만 15채, 그 중 하나는 40만 달러 이하에 나왔다. “도심의 공해와 교통 체증, 범죄를 벗어난 것은 좋지만 다시 하라면 교외로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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