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뭔 소린지 조금은 알 듯한 시구로써, 바람의 은덕을 노래했습니다. 어느 시인은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아무래도 모를 듯한 시구로 삶의 의지를 다진 바 있습니다.
아무튼, 바람을 읽어내는 시인들의 깊고 여문 관조의 힘을 영, 따라잡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상관없는 일입니다. 살면서 도무지 그 흔하게 스치는 맑고 시원한 바람기마저 한 점 맛 볼 겨를조차 없이,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아등바등 매달려 왔습니다. 돌아보니 어즈버(‘아!’의 옛말) 딱도 한 중생입니다.
그런데, 어찌 어찌하면 바람이 시원하다는 기막힌(?) 소식을 전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 무슨 사연 이길래.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된다 하여도/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된다 하여도/ 나의 목숨이 백 년 백 년 한 오백년 산다 하여도/ 마침내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 텐데/ 내가 가진 그 모든 것 놓아버리니/ 바람이 시원하구나/’
이 노랫말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큰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곡가 김희갑 선생과 소설가 양인자 선생의 부부 합작품을, 비구니 인드라 스님이 노래한 ‘하여도’라는 제목의 ‘뽕짝’ 입니다.
헌데, 꽤나 눈치 약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그 모든 것은 한사코, 말아 쥐고 있으면서, 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은밀히 괴롭혔던 아랫배의 묵직한 변의(便意)가, 돌연, 소통되었을 때와 같은 후련함을 느끼게 되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노랫말 속의 ‘시원함’이란 물론, 우리가 육신의 오감으로 ‘새삼스레’ 느끼는 바람의 시원함만을 일컫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그 시원함은 필요 이상의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소유욕으로부터 해방된, 그야말로 순일하고 잘 정화된 마음만이 접할 수 있는, 고결한 감정이라 하겠습니다.
불교의 선가에서는 방하착!(放下着) 하라고 합니다. 이 말 속에는 모든 불교 교리의 심심 미묘한 핵심과 고도의 실천 수행체계가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습니다.
방하착은 ‘마음을 내려놓으라’ ‘생각을 쉬어라’ ‘집착에서 벗어나라’ 등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마는, 그 숨은 의미는 ‘해방과 자유’라는 동일한 모습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본시 비었던 손을 채우는 데만 급급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타와 자비심 같은 미덕의 가치가 묵살 된 채, 극단적인 이기심만으로 채우려는 집착과 탐욕은, 결국 죄행의 단초가 되어 파멸과 고통의 함정 속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필요’라는 미명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불필요’한 것까지도 채우고 붙잡기 위해, 목숨 걸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부려온 중단 없는 탐착으로,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된 사람이든, 될 듯 말 듯 안 되는 일만 보면서 어렵사리 살아낸 사람이든, 이제는 한 생각 쉬었다 갈 일입니다. 한번쯤 그것들을 놓아볼 일입니다.
그리하면 뉘라서 알랴. 참말로, 바람이 시-원할런가. 내친김에 이왕, 놓겠다는 그 마음까지도 놓아보면 또한, 뉘라서 알랴. 행여, 결단코 열릴 것 같이 않던 그 마지막 뚜껑(?)마저 화-악 열릴런가.
박 재 욱
(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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