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인연합회장 선거 등록금이 내렸다. 연말 열린 정기총회에 상정된 선거 시행세칙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출마자들은 그동안의 4만 달러에서 2만5천 달러의 등록금만 내면 되게 됐다. 사실 이번 개정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당초 2004년에 치러진 제32대 선거까지 1만 4천 달러이던 등록금은 두 차례의 기습 인상으로 4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명분은 공명선거였다. 그러나 ‘공명’은 생각만큼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과도한 등록금은 다른 부작용도 낳았다. 선거 관리비용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그 첫 번째다. 특히 커뮤니티 센터 건립비용을 회장 출마자들에 강제한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무리수였다. 두 번째는 이로 인해 능력 있는 인사들의 출마 기회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었다. 비싼 등록금 마련할 돈이 없으면 아예 출마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지난 선거를 앞두고 한인사회 요로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면서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인사회가 잃어버린 상식과 합리성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인회가 동포사회의 외면을 받을 요소는 회칙에서부터 군데군데 널려 있다. 한인연합회의 경우 대표적인 사례는 회장 유고시의 조항이다. 김옥태 회장 사후 한인연합회는 정상궤도를 이탈했다. 그 시발은 수석부회장이 대행 직을 맡는 회칙이 꾸겨진 것이었다. 몇몇 이들이 회칙을 멋대로 바꿔 ‘대행’ 자를 떼 내면서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대행 꼬리표를 달고는 힘이 안 실린다”는 게 개정의 명분이었지만 능력과 리더십이 없으면 회장 간판도 무용지물임이 입증됐다. 이는 황원균 북버지니아 한인회장이 ‘대행’직을 훌륭히 수행해낸 사례에서도 충분히 증명됐다.
우려스런 점은 개정된 조항 역시 함정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회장 유고시는 이사회에서 선출하며 수석부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해 총회 인준 후 잔여임기를 마친다.”
이는 선거 없는 회장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물음과 이른바 대수(代數) 문제에 직면한다. 이를 정비하지 않으면 김인억 회장 때 불거진 정통성과 대수 논란은 끊임없이 재연될 것이다.
북버지니아 한인회 회칙도 손볼 데가 없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회장 출마자격 규제다. “2년 이상 북버지니아 한인회에서 봉사한 자”란 출마 자격은 한인회에서 봉사할 뜻이 있는 이들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물론 자격 규제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봉사의 경험도 없이 무턱대고 한인회장 간판을 달려는 이들의 ‘야심’을 막는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은 다른 제도로 방지해야지 아예 공평한 출마기회를 막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서 한참 벗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권메릴랜드한인회의 변화는 새삼 눈에 띈다. 이 한인회는 12월 총회를 열어 회장 선거 관련 주요 회칙을 손질했다. 그중 회장 입후보자 자격 기준을 완화한 점은 신선하다. “2년 이상 한인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현행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신근교 회장은 “한인회의 문턱을 낮추고 유능한 인사들의 한인회 참여 유도를 위한 조처”라고 그 취지를 소개했다.
이 한인회는 우편투표제도 도입했다. 선거 때마다 논란이 돼온 대표성 문제와 참여율 제고를 위한 아이디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개정 회칙이 다음 회장 선거부터 적용된다는 점이다. 한인연합회가 회칙을 바꿔 자신의 임기부터 적용하는 우를 범해 비난을 받았지만 신근교 회장은 상식을 따랐다.
회칙은 그 사회의 상식을 담아야 한다. 회칙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몇몇 인사들의 얄팍한 술수를 담거나, 합리성을 저버리면 결국 한인회는 외면 받게 된다. 2009년 새로 출발하는 한인회들이 낡고 불합리한 회칙부터 바꿔 동포들의 상식과 여망에 부응하길 기대한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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