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금융인 정원훈 남기고 싶은 이야기 <12> 새한은행
필자는 2001년 은퇴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와 서예활동에 몰두했다. 필자의 작품 중 하나다.
한인은행의 우수한 영업실태 부각
주 은행국과 관계증진 계기
한국금융계 교포은행 무시 시련도
■FDIC의 행장 자격심사
주은행국 감독원 부원장실에 발을 들여놓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쳤다.
“Hi, Won!” 묵직한 목소리와 더불어 내 등에 두툼한 손의 무게가 느껴졌다. 은행 부감독원장인 David Scott이다. “What’s up?”하는 그의 말에 나는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연방 예금보험공사(FDIC)가 그런 입장이라면 내가 물러나야지 했다.
그는 나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Who’s he?”란 반문을 던진다. “F!” 내가 답하니 그의 반응이 나의 의문을 찔렀다. “Is he? I’ll talk to him and let you know in a matter of a week!”
일주일이 아니라 3일만에 그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오는 화요일 같이 FDIC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가자. 거기서 단판을 짓자.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보라”는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나는 제법 긴 진정서 같은 것을 마련하기도 했다. 나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었지만 FDIC가 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데도 다소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회의에서는 FDIC가 회담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F씨를 David이 밀어대는 판이었다. FDIC에서는 부지부장, 기타 보좌관들이 참석했다. David는 회의실 한복판 상석에 육중한 몸집을 던지면서 손짓으로 일행의 참석을 재촉했다.
그리고 한두 마디 FDIC 측에 인사말을 보내더니 날더러 FDIC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해명할 것이 있으면 해보라고 발언권을 주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작성해 간 서한을 배부했다. 그러고 바로 나는 문제된 건들이 잘 처리된 사실을 알렸다. 그 다음 내가 두 은행의 행장을 역임하던 당시의 영업처리 방식, 고객심방, 관련회합 개최 등으로 조성할 수 있었던 커뮤니티 분위기, 프리미어 뱅크의 상을 매년 받았던 실적 등을 설명했다. 그것은 도시 주변의 중소 은행들이 하고 있는 자칫하면 기계적인 대 커뮤니티 접촉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 날 심판관들은 이런 나의 설명에 뜻밖에도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던 갖가지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20분이면 끝났을 회의가 정오까지 두 시간이나 계속됐다. 회의를 마치고 회장을 나올 때 FDIC 부지부장이 내게 다가오며 “You have done very well!”이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며 언제 허가를 내줄 거냐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건졌다. 그는 약간 주저하더니 한두 주 후면 되지 않겠냐고 미소를 지었다. 실제 한 닷새 후에 인가가 나왔다.
그 날의 질의문답을 거쳐 뜻밖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얻은 덕은 누가 봤을까 생각해 본다. 직접 수혜자는 나와 새한은행이다. 나는 이번 일이 결말지어지자 곧 은행 이사회에 그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한결 같이 은행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이번 회의의 덕을 보게 된 또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교포은행계이다. 20분 예정의 회의가 2시간이나 진행되는 동안에 부각된 것은 결국 은행 환경으로서의 교포사회, 교포은행들의 효율적인 대 커뮤니티 서비스 등이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 내에서의 대화였지만 감독기관 간부들에게는 교포은행들의 우수성에 대한 좋은 홍보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내 자신 그런 역할을 다했다는데 적이 만족감을 느꼈다. 위기가 기회를 가져 온다더니 그런가 보다.
■주 은행국 간부들
이들 수혜자들 외에 또 덕을 본 사람은 David Scott이다. 그 자신은 그런 생각은 갖지 않았겠지만 이번 일로 감독기관 내에서 더욱 체면을 세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기가 승인한 은행의 행장후보가 심판장에서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펴고 자기 관내의 한국계 은행들의 우수한 영업 실태를 밝혀준 것.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실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계 은행들의 양호한 영업실적은 그와 한 통속이라 할 몇몇의 관할 관리관들의 선도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David Scott의 직속 차석이었던 Frank Karlmeyer 같은 감독원장보는 가끔 자진해서 은행에 나와 은행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한 특강을 해주곤 했다. 한국동란 후기에 화천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의 장교였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그 후 그가 그 관리를 맡았던 한국계 은행들의 열성에 감동하여 과외의 봉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David Scott과 그 분신과 같은 Frank 등 몇 사람은 그 때뿐 아니라 가주 한국 은행사 30년 동안 줄곧 우리 교포은행과의 연계가 그 후 한국계 은행들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것은 이제는 공지의 사실이 되었다.
■초기업적
새한은행은 1991년 6월12일에야 6가와 웨스턴 애비뉴의 전 가구점 건물을 개·보수해 첫 지점으로 개업했다.
1991년께만 해도 웨스턴가는 오히려 한적한 활기 없는 거리였다. 그런대로 코리아타운에 가까운 올림픽가와의 교차점 근처에는 한국 상점이 잇따라 서기 시작했지만 윌셔가 북쪽은 오히려 황량한 분위기였다. 이런 곳에 새 은행이 본점을 갖는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뭔가 이곳에 머지않아 발전의 싹이 틀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6월12일은 서울서 1950년에 한국은행이 발족한 날, 그 은행은 나의 본가집인 셈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마음에 간직한 날이다. 이 날을 시작으로 새 은행은 순조로운 성장을 해나갔다.
55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고고의 성을 올린 새한은행은 내가 그 은행을 떠난 1996년 6월 말에는 총자산 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연평균 성장률 25%, 그 자체로 훌륭한 성적이 없지만 암만해도 가주외환은행, 한미은행 등 초기은행들의 성장률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은 못되었다.
당시 기세가 오른 기존 6개 교포은행의 경쟁 속으로 뛰어든 후발은행이 갖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런대로 새한은행은 4년째인 95년에는 6%, 96년도에는 10%의 배당금을 줄 수 있었다.
■국민은행 LC건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1995년 중엽에 뜻하지 않았던 시련이 왔다. 새한은행이 한국의 국민은행을 통해 발행한 소위 non-operation(매입금지) LC건이다. 이런 LC는 이에 따른 선적서류의 구매는 어떤 은행에도 허용되지 않는 일종의 거래 통지에 불과하다.
그것을 국민은행이 nego(선적서류 매입)를 해놓고 그의 상환책임을 새한은행에게 떠넘긴 것이다. 국민은행은 한두 번 상환청구를 하더니 다짜고짜 배상소송을 걸어왔다.
처리 관례로 보아 새한은행의 상환청구 거절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한국 최대의 은행 금력을 배경으로 억압 일방의 작전으로 나왔다. 이런 상태는 내가 은행을 떠난 후에도 상당기간 계속되어 법정에서 줄다리기를 일삼았다. 결국 해결은 되었지만 쌍방은행이 다 같이 원금보다는 소송비용의 누적으로 불필요한 손실을 면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 건에 관련해 내가 특히 위기감을 느낀 것은 본국 은행들이 교포은행을 보는 시각이다. 뭔가 자격 미달자들이 모여서 한다는 은행, 자력도 자질도 공히 수준급도 못되는 얼치기 소규모 금융업자, 그런 것이 바로 해외의 교포은행이다 하는 것 같은 인식이다. 이런 협량하고 고압적인 견해가 마침내 새한 대 국민은행 건 같은 어처구니없는 분쟁을 유발한 것이다. 무지와는 싸울 수 없다고 했다. 이번 건이 바로 그 실례로구나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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