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를 내려다보고 선 깎아지른 듯 높은 도짐보 절벽은 일본 후쿠이 현의 관광명소로 꼽힌다. 그러나 유키오 시게는 장관을 이루는 기암괴석엔 별 관심이 없다. 매일 거친 암석 사이를 누비는 그가 찾는 것은 따로 있다 : 삶의 위기에 몰려 이 위태로운 바닷가 절벽 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외로운 영혼, 자살을 하러 이곳을 찾은 사람이다. 도짐보는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일본에서 최고의 ‘자살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은퇴한 경찰관인 65세의 시게는 이곳에서 투신하려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만류하여 자살을 예방하며 지난 5년을 보냈다. 그의 노력은 요즘 다시 증가세를 보이는 일본 자살률에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경찰 추산에 의하면 금년의 일본 내 자살건수는 최고를 기록했던 2003년의 3만4,427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95건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본인의 자살률은 미국인의 3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노부부 자살 방치한 당국의 무관심에 분노한
은퇴 경찰관, 자원봉사대 조직 매일 순찰나서
5년간 222명 자살 만류, 새로운 삶의 길 안내
시게와 그가 조직한 자원봉사대는 지금까지 222명을 자살에서 구해냈다. 보통 높은 자살률에 무관심한 일본에서 그는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다. 한편으로 비판도 받는다. 일본은 대체로 체제 순응적 사회여서 설사 인도적 목적이라도 사회운동으로 관심을 끄는데 대한 비판이다. 또 관광업계에 영향을 미칠 것도 우려한다.
“일본에선 불거진 못은 망치를 맞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당국의 냉담한 직무유기에 화가 나 자살절벽의 자원봉사 순찰을 시작했다는 시게는 “계속 할 겁니다. 난 망치로 치려면 치라고 맞섭니다”라고 말한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높은 자살률이 한편 ‘명예로운 사무라이의 할복 전통’에 향수를 느끼는 일본인들이 가진 자살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경기침체가 주요 원인이다. 1998년경 자살률이 급증한 것은 당시부터 일본의 전통적인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다. 봉급과 일자리 보장은 점점 사라지는데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함께 낮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살예방은 어디서나 힘든 업무이긴 하지만 일본에선 특히 극복하기 힘든 과제다. 경제적 어려움은 금기시되는 화제의 하나여서 위기에 처해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 일본인들은 자살을 공중보건 이슈가 아닌 매우 개인적인 선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을 사회문제로 조명하려는 노력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도짐보 절벽이 위치한 후쿠이 현의 작은 도시 사카이 당국은 절벽에 외등을 설치했으며 2대의 공중전화와 전국 자살예방 핫라인에 전화를 걸때 쓸 수 있도록 10엔짜리 동전을 수북이 쌓아놓았다.
금년에 자살을 하려고 이곳을 찾은 사람은 경찰이 알기에만 140여명으로 예년평균의 2배에 가깝다. 경찰이나 관광객들의 저지로 자살을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들이다. 신게의 자원봉사대가 구해 낸 54명을 제외한 숫자다.
42년간의 경찰생활 말년에 도짐보 관할서로 발령을 받았던 신게는 자신이 바다에서 건져내야 했던 시체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어느 날 순찰을 돌다 절벽에서 투신하려는 노부부를 발견한 그는 설득 끝에 자살을 단념한 그들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련 정부기관으로 보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노부부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노부부가 찾아간 정부기관에선 인근 다른 도시로 갈 기차표 살 돈을 주었을 뿐이었고 노부부는 이웃도시에 가서 자살했다. 시게에게 온 편지는 노부부가 자살 직전에 부친, 말하자면 유서였다.
“난 정부당국이 정신을 차려 자살방지의 업무를 완전히 인수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겁니다. 그들이 냉담한 무관심으로 귀중한 생명을 포기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당국의 냉담함에 분노한 시게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지금은 77명의 봉사대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하루 2~3 차례씩 순찰을 도는 이들은 자살하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들을 달래 사무실로 데려와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하소연을 들어주며 새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신게가 그렇게 구해낸 사람 중 하나가 29세의 유타카 야마오카다. 감원당한 후 자살을 결심했던 야마오카는 지난 해 도짐보 자살절벽을 찾아 왔다. 바위에 쭈그리고 앉은 그에게 다가간 시게는 그의 곁에 말없이 앉아 함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야마오카는 자살을 단념했고 시게는 그가 마음을 추스릴 때까지 한 달간 무료로 아파트에 머물게 했다. 새 직장에 취직한 야마오카는 최근 신게의 사무실에 들러 새로운 삶의 길을 알려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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