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작년 11월 대통령선거 승리 연설에서 삶의 역정을 거론해 유명해진 애틀랜타의 흑인 할머니가 21일 10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할머니는 앤 닉슨 쿠퍼 여사.
이 할머니는 보행기에 의존하는 것을 제외하곤 건강이 괜찮았으나 몇 주 전부터 순환계에 이상이 생겨 입원했다가 21일 애틀랜타 시내 서쪽에 위치한 자택에서 영면했다.
쿠퍼 할머니는 작년 11월4일 당시 오바마 대선후보가 대선 승리 직후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할머니의 삶을 인용하며 사상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 화제가 됐다.
오바마는 연설에서 그녀는 자동차나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한 세대가 지난 뒤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라고 운을 뗐다.
오바마는 그러면서 오늘 밤 나는 그녀가 한 세기를 살아오며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를 풀고 희망과 투쟁뿐 아니라 역사의 진보를 보게 됐고 평생 ‘우린 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온 게 아니라 그것을 강요하던 사람들에게 ‘우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됐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연설로 일약 명사가 된 그녀는 다음날 자택에 몰려든 기자들에게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에 대해 그런 일이 발생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건 당연히 백인들 차지라고 생각해 왔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고는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음을 알게 됐고 정말 기쁘게 이를 받아들인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쿠퍼 할머니는 1월20일 역사적인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지만, 건강 등 문제로 정중히 사양하고 집에서 TV를 통해 장엄한 광경을 지켜봤다.
할머니의 네 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인 딸 조이스 보보(84) 여사는 어머니가 평온한 가운데 돌아가셨다라며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라고 회고했고 15명의 손자손녀 중 맨 위인 케네스 매닝은 할머니가 벌써 그리워진다라고 말했다.
다른 손자인 앨버트 쿠퍼는 할머니는 아마도 노예제와 흑백분리주의, 빈곤으로 말미암은 차별과 장벽의 고통을 겪으면서 전문직 종사자로 성장해온 세대의 마지막 생존자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1902년 미국 테네시 주(州) 쉘비빌에서 태어난 그녀는 1922년 치과의사인 앨버트 베리 쿠퍼와 결혼한 뒤 애틀랜타로 이사해 네 자녀를 낳았다.
보험회사 사원으로 잠시 일한 것을 빼곤 가정주부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흑인 여학생들을 위한 ‘걸스 클럽’을 창립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녀는 1941년 처음으로 유권자로 등록했지만,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심한 분위기 때문에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결국 ‘가족을 위해 투표해달라’며 남편에게 투표를 맡겨야 했다.
1967년 남편이 세상을 뜰 즈음에야 흑백분리 정책의 폐지를 목격했고 지난해 10월16일 조기투표에서 오바마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조기투표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CNN 방송에 소개되자 오바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지지를 받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라는 감사의 뜻과 함께 휴대전화 번호를 자동응답기에 남겨놨다. 할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겠다라는 약속과 함께.
할머니의 인생역정은 ‘한 세기와 변화 - 대통령이 이름을 거명하기 전까지의 내 삶(A Century and Some Change : My Life Before the President Called My Name)’이란 제목의 자서전으로 내달 초 발간될 예정이라고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jc)’이 전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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