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우리가 온통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 LA타임스에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여 60년 전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를 담은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의 글이 ‘From South Korea, A Note of Thanks’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편지가 아니더라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특히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나 간접적으로 전쟁의 영향 하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들에게 그들의 희생은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입니다. 오죽하면 부흥사로 70~80년대를 풍미하셨던 모 목사님은 설교 중 단골 예화로 어린 시절 “헬로 헬로 쵸코레뜨 기브 미, 헬로 헬로 먹던 것도 괜찮아…”라는 노래를 부르며 미군병사들을 쫓아다닌 경험을 사용하며, 성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셨겠습니까?
그러나 LA타임스 기고문을 읽으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감사 편지가 왜 미국 언론에만 실렸을까? 이 글뿐만 아니라 한국전 참전국가에 대한 감사는 왜 유독 미국에만 집중되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유엔 참전국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의 참전이 우리의 뇌리에서, 우리의 감사의 대상에서 밀려날 정도로 무가치한 것이었을까요? 에티오피아 657명, 콜롬비아 639명, 태국 1,273명, 터키 3,216명, 필리핀 398명 등…. 우리를 위해 전사하고 부상당한 다른 유엔 참전국의 희생자 숫자입니다. 이들의 숫자를 모두 합해도 미군 희생자 13만7,250명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각 개인들의 희생은 똑같이 자신의 유일한 생명을 모두 내어놓은 것으로써, 단순히 합계로 계산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똑같이 부모에게는 생떼같이 귀한 아들이요, 한 여자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지아비요, 자녀들에게는 인생의 보호자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미국 외에 다른 참전국 용사들의 희생이 잊혀지고,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가 그들이 지금 미국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 혹시 지구촌이라는 마을에서 소외된 자들이기 때문, 혹시 우리가 감사를 해도 뭔가 실질적 이익의 발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면, 정말 그런 것이라면 아마도 미국에 대한 감사도 진실하지 않은, 저의 있는, 변질된 감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가르치신 ‘가난한 과부의 동전 한 닢’ 교훈은 우리의 감사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너무나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고, 그런 감사의 이어짐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귀한 원동력일 것입니다.
차두리가 흘린 사나이의 진한 눈물을 뒤로 하고 막을 내린 월드컵의 달, 60년 전 우리 민족이 받았던 사랑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달, 6월의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 자신들의 피와 살을 극동 작은 나라의 이름 모르는 산하에 아낌없이 산화시킨 유엔 참전 21개국을 열거해 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덴마크, 인도, 스웨덴, 노르웨이,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캐나다, 에티오피아, 터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등….
흥미로운 것은 위의 열거된 나라 중 앞에서부터 10번째 나라까지는 이번 남아공 2010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만난 국가들이라는 것입니다.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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