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조의금 사절합니다.
위의 글 제목은 얼마 전에 작고한 한미문화 교육원장 이계조 선생의 한국일보에 실렸던 부고의 끝맺는 글귀이다. 이계조 선생 하면 LA에서 오래된 교회나 교육 관계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올곧게 살면서 오직 기독교 교육과 청년 문화사역에만 헌신하신 분이셨다.
돌아가신 분에게는 불경스러운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이계조 선생의 또 다른 인간적인 면은 자기 생각에 옳지 않다고 여겨지면 참지 못하고 바른 소리를 하는 독설가로도 유명하셨다는 것이다. 나와 이 분과의 교제는 1970년 말부터 시작됐다. 한 때 LA에 사실 때에는 내가 세 들어 사는 아파트의 두 칸 방 중 하나에 잠시 계신 적도 있다.
1998년 6월 북한의 식량난이 절정이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LA 기윤실 회원들과 배고픈 북한 어린이에게 줄 빵 한 트럭을 싣고 북한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이 선생도 동행하셨다. 이 선생은 이처럼 내가 관계하는 기윤실 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칭찬도, 쓴 소리도 해주셨다. 때로는 개인 일까지 간섭하기도 하셨다.
내가 이 호루라기 란에 ‘기독교와 법정의 무소유’라는 칼럼을 쓴 일이 있었는데 나의 이 글을 읽고 즉시 전화를 걸어 와 “법정이 무슨 무소유주의자냐! 말과 글로만 무소유를 외쳤지 실제로는 무소유를 사치로 누린 사람”이라고 혹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칼럼을 쓴 목적은 법정의 무소유와 비교해 ‘우리 개신교의 십자가 없는 기복, 긍정, 형통 성장주의를 꼬집은 것’이었는데 잘못 이해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후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내용은 뜻 밖에도 현재 암에 걸려서 투병중인데 잘 대응하고 있고 재산은 암치료 연구기관에 기탁하기로 유언장을 썼노라고 했다. 두 달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이 날은 그가 살아오면서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은혜를 감사하며 보답하기 위해 대접하는 자리였다. 예배와 간담회를 진행하신 이창순 목사님께서 이 선생에 대하여 이 선생은 외적 형식과 현실에 메이지 않고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신 분이라고 칭찬하셨다. 죽음을 앞두고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인생을 정리하고 마감하려는 모습이 그날따라 참 아름답게 보였다. 이 초대연 후 한 달도 못가서 너무 일찍 이 선생의 부고를 신문에서 보게 되었다.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이 선생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했으니 죄송하기 그지없다.
이 선생님이 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화환과 조의금은 사절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게는 현재 동산도 부동산도 가진 것이 없으니 유언장을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유언으로 남긴다면 장례식 때 이 선생처럼 화환은 사절하겠지만 부의금은 받아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어떤 자선단체에 전액 기부했으면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소속된 기윤실을 통해 새로운 사업으로 유산 안 남기기 운동과 장례문화 개선사업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유 용 석
(LA기윤실 실무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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