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뼛거리거나 말수가 적으면 성공하지 못할까. 아시안 아메리칸은 다른 어느 인종보다 성공하려는 의지와 열망이 높고, 학교에서는 각종 상을 휩쓸며,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대 재학률이 앞서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리더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고 직장과 생활 정책센터(Center for Work-Life Policy)가 최근 발표했다.
그 예로 포춘 500대 기업의 핵심 경영자로 활동하는 아시안 비율이 2%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자신 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묵언수행 하듯 묵묵히 일만 하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런 장면이 가장 손쉽게 목격되는 곳은 수퍼마켓 계산대다. 트레이더 조스에서 벽에 걸린 포스터 ‘매리너스가 홈런 칠 때마다 급식 프로그램에 100달러씩 기부한다’를 보고 캐시어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오늘까지 홈런을 31개 밖에 못쳤군요.”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래도 29개에 그친 작년보다 올해는 성적이 좋다”로 시작해서 야구 이야기를 줄줄이 엮어가더니 급기야는 “스토어 매니저가 야구를 꽉 잡고 있는데 나오라고 할까요”라는 농담까지 했다. 담소를 나누는 것은 뒷손님에게 기다리는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해 묵묵히 그리고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아시안 마켓 계산대 모습과는 사뭇 대조된다.
하지만 아시안 모두가 표현력이 부족하고 잠잠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도 안면을 터놓은 사람과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집 밖은 위험한 곳, 낯선 사람은 경계의 대상” 이라는 특유의 정서에 길들어져 낯선 사람을 만나도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하는 문화에 코드를 맞추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다.
나아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사회적ㆍ문화적 척도에서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어느 한쪽의 가치관으로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부정확한 추측’이라는 웨스턴 워싱턴대학 심리학 교수 데이빗 수의 논문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 환자를 아시안 의사와 백인 의사에게 각각 보인 결과, 아시안 의사는 환자를 사교적이고 친근감 있다고 평가하고 백인 의사는 수동적이고 초조하며, 대인관계가 부족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 다음 미국인 환자를 보였을 때는 아시안 의사는 환자가 활동적ㆍ공격적ㆍ반항적이라고 평가했고, 미국인 의사는 따뜻하고 모험적인 환자로 보았다.
그렇다면 아시안의 출세 길을 막는 것으로 ‘미묘한 차별’이 더 큰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2,900여명의 설문 응답자 가운데 25%가 “차별 때문에 승진길이 막혔다”고 대답했듯, 아무리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또렷하게 표현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있고 인맥구축을 잘한다 해도 미묘한 차별 앞에서는 도리가 없다.
탈법ㆍ월권행위를 단속하는 ‘월스트릿 보안관’으로 알려진 세 명의 여성 중 FDIC(연방예금보험공사) 의장 셰일라 베어와 의회감독 의원장 엘리자베스 워런이 지난 달 자리에서 물러났다. 쭈뼛거리거나 말수가 적어서가 아니다. 그녀들의 활약을 ‘방을 깨끗이 치워라’는 엄마의 잔소리 정도로 여기는 백인 남자(가이트너 재무장관)의 교묘한 성차별에 밀린 것이다.
미묘한 차별에 밀릴 때 밀리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연습은 필요하다. 쭈뼛거릴 이유가 없다. 좀 더 당당해 져야 한다. 직장 상사가 “퇴근 후 공항까지 라이드 해 달라”고 부탁하면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 피곤하다”며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그런 연습의 시작이다.
대니얼 홍 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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