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은 그해 초까지만 해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그러나 그 해 6월 13일 효순 미선 양이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 교통사고였음에도 미국의 미지근한 늑장 대응은 때마침 “반미면 어떠냐”를 표어로 내건 노무현 지지자들을 결집시켰고 순식간에 반미 정서를 나라 전체에 퍼뜨렸다. 이회창도 뒤늦게 효순 미선 추모 행렬에 동참하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노무현 진영을 고취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교통사고는 노무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 역사를 바꿔 놨다.
한국의 운동권-반미-시민단체는 이들이 죽은 6월 13일이면 해마다 추모제를 지낸다. 평양의 모란봉 제1중학교에는 ‘효순 미선양’을 기념하는 자리가 보존돼 있고 2003년 이들을 명예학생으로 등록시킨 뒤 졸업장까지 수여했다. 미군 차에만 치어죽으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셈이다.
노무현 말대로 이 사건으로 “재미 좀 본” 운동권-반미-시민단체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자 이를 전년 대선 참패를 만회할 호기로 보고 ‘소의 탈을 쓴 효순 미선양 사건’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한국인은 광우병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가졌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미국산 쇠고기는 먹지 않는다’ 등등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유포됐고 MBC 등 일부 언론은 사실을 왜곡하며 국민을 선동했다. 효순 미선양 또래의 여중생들이 연일 광화문 광장을 메우며 촛불 시위를 열고 “어린 나이에 죽기 싫어요”를 외치며 울부짖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는 혼이 나도 단단히 났다.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 온 국민은 미국 쇠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다. 지금까지 이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온갖 허위 정보로 전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운동권-반미-시민단체 선동가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일은 없다.
오히려 이들은 이번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걸고 효순 미선-광우병 파동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명목상으로 FTA 반대자들은 외국 투자가와 한국 정부 사시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국제 투자 분쟁 조정 센터에서 다루도록 한 ISD가 독소조항이기 때문이라며 시비를 걸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국 정부는 이미 81개국과 협정을 맺고 이 조항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와 하는 것은 괜찮지만 미국만은 안 된다고 한다.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입김이 너무 세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 기업이 이와 관련, 다른 나라를 제소한 것은 모두 108건인데 승소가 15건, 패소가 22건이다.
정동영을 비롯한 FTA 결사반대자들 상당수는 이 협정을 맺은 노무현 정부 때 요직을 역임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 때는 이 조항이 그렇게 나쁜지 몰랐다”며 “FTA는 매국”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자신이 매국을 하는 줄도 모르고 매국을 한 멍청한 매국노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런 인물들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석고대죄를 한 후 자진해서 감옥에 가야 마땅하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 아프리카 수준의 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에 육박하게 된 것은 미국이 시장을 열어 한국 물건을 팔 수 있는 문을 열어줬고 한국은 적극 이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뇌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미 인터넷을 통해 ‘FTA를 하면 한국 농민은 유랑걸식하는 거지가 된다’ ‘FTA는 한국민을 노예로 삼으려는 미국의 흉계’ 등등 광우병 수준을 능가하는 괴담이 판을 치고 있다. 한국이 망하는 것은 ‘FTA를 하면’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 물건에 대해 시장을 닫으면’이다. 한국민들이 더 이상 무책임한 대중 선동가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기를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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