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범죄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있다. 수용소로 끌려간 귀도는 익살스런 행동과 말로 아들 조슈아를 안심시키고 비참한 현실을 신나는 놀이로 여기게 한다. 아들에게 재밌고 유쾌한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정이 눈물겹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도 있다.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 바르샤바 폐허 속에서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독일 장교 앞에서 아름다운 쇼팽의 곡들, 오로지 살기 위해서, 먹을 것을 위해서 피아노를 쳤다.
1,100명의 유대인 목숨을 구한 독일장교 오스카 쉰들러의 실화를 그린 ‘쉰들러 리스트’도 있고 ‘안네 프랑크의 일기’ ‘사라의 열쇠’ ‘닥터 코르작’ ‘카포’ 등등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런 영화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1945년 8월 제2차 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 독일이 600만명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대량학살)를 인정하고 사과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일찌감치 나치의 대량 학살지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했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했고 정부와 기업이 따로 재단을 설립해 나치 학살에 대한 발굴과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폴란드, 이스라엘 등 주변 피해국에도 국가 배상금을 지급했고 강제 동원된 외국인에게도 배상금을 지급했으며 대통령과 총리가 바뀔 때마다 독일의 과거 범죄행위를 반성하며 인류가 이런 범죄를 더 이상 저지르지 않기 위해 과거사를 계속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후세가 선대가 저지른 잘못을 일깨우고 경계로 삼는 행동은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된다.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은 몰랐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고 관심도 갖게 된다.
그에 반해 같은 패전국 일본은 아직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가 없다. 그 동안 일본군 위안부가 나온 영화로는 루촨 감독의 ‘난징, 난징’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이 잠시 나올 뿐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드물었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이 충격을 주었고 그 중 정대실 감독의 ‘침묵의 소리’는 미국 내에서도 자주 소개되며 미국인들에게 위안부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얼마 전 TV에서 일본 위안부 출신 대만 할머니들이 일본 국회를 항의 방문한 뉴스를 보았다. 한 할머니가 강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는 돈 필요 없다.
우리의 자존심과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가 강제적으로 위안부를 끌고 간 것을 인정하라”였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절 고생과 노력을 돈으로 보상받기 원한다. 하지만 이들은 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지난 세월,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한 다음 눈을 감고 싶은 것이다.
오는 23일 퀸즈 커뮤니티 칼리지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홀로코스트 생존자 간의 뉴욕 만남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독일 나치 치하에서 고초를 겪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일제 치하 위안부 할머니들의 역사적 만남의 행사를 뉴욕 뉴저지 한인유권자 센터와 홀로코스트 센터가 마련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이슈가 홀로코스트와 동등한 세계적 인권 이슈로 발전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행사와 아시안 인턴십 프로그램 개설에 한인 독지가들의 관심이 적극 필요하다.
한걸음 물러나 있는 정부보다 이렇게 민간단체에서 맨발로 한 걸음씩,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1965년 한일협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일본과의 수교를 위한 회담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철저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시작이 잘못되니 마무리를 위한 과정이 이렇게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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