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현장에서 은퇴한 뒤 일 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그 때 한국과 미국을 위하여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가칭 ‘한미목회자 기도회’라는 걸 조직해 보려 했다. 한국은 모국이요 미국은 시민권을 가진 나라이기에 두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한미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중재역도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미주에서 목회하다가 한국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이 많아서 쉽게 일차 모임을 가졌다. 그래서 조직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려고 취지 설명도 하고 규약 초안도 제시하며 두 차례 더 모였다.
하지만 결국 성사 되지 못했다. 무산된 이유는 간단했다. 담임목사 입장에서 미국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적극 주도하기가 곤혹스럽다는 것이었다. 교회 안에 반미감정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란다. 여러 군데에서 특별집회를 인도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떤 담임목사는 설교에 미국 이야기를 포함시키지 말아달라고 조언했다. 인기가 전혀 없는 메뉴라는 이유였다.
담임목사만큼 대중의 성향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은 반미감정이 결코 특정한 ‘종북 세력’에만 그치지 않고 특히 젊은 층에는 보편화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니까 한반도 북쪽에서는 미국이 ‘철천지 원쑤’라며 온 인민이 이를 갈고 있고, 남쪽은 적극적/소극적 반미 세력이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으로부터 기독교신앙을 전수받은 교회조차 이 정도라면 교회 밖의 반미감정은 어떻겠는가.
얼마 전 한국에서는 FTA 태풍이 지나갔다. 그 때 어떤 대통령 후보 지낸 야당인사가 통상교섭 대표에게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을사오적’이라고도 했고 ‘신판 이완용’이라고도 몰아붙였다. 그리고 대통령을 향하여 ‘뼛속까지 친미’로 염색되었다는 모욕적 언사를 쏘아댔다.
이제 한국인의 반미감정은 수위를 크게 넘어섰다. 조금만 더 파고가 높아지면 걷잡을 수 없이 봇물이 터져 나올 태세이다. 우리 코리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적 판단과 행동을 선호하기 때문에 선동선전에 손쉽게 넘어가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그러다가 우리 미주 한인들에게도 매국노, 반역자, 을사오적이라고 할지 모른다. 과대공포증일까.
도대체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방조했던가. 남북분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6.25전쟁을 미국이 유도했나. 박정희나 전두환 독재를 지원했다는 것인가. 한국의 경제를 수탈했다는 것인가. 미군주둔으로 한국이 큰 피해를 보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남북통일을 방해했다는 것인가. 한국문화를 오염시켰는가.
모두 논란은 있어왔지만 대답은 단연 ‘아니다’이다. 미국의 정책에 무리수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손실보다는 한국이 입은 혜택이 훨씬 크다. 그래서 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꼭 묻고 싶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 때문에 미국이 이득을 보았는가, 아니면 미국 때문에 한국이 이득을 보았는가.
길게 말할 것 없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만으로도 미국에 대하여 진정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특징은 자유, 평등, 생존, 행복추구, 법치, 인권, 주권재민, 대의제도, 비밀선거, 삼권분립 그런 것들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은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이 되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북조선은 어떤가.
미주한인들과 이곳에서 공부한 한국의 지도층이 적극 나서야 할 과제가 있다. 미국을 제대로 배우자는 ‘학미 운동’을 펼치는 일이다. 반미를 한다 해도 미국을 배우기 위한 목적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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