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좋은 뜻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세계 여러 나라는 중앙은행을 통해 불경기를 줄이고 호경기를 늘리려 한다. 그러나 불황은 호경기의 방만함과 비효율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금리나 통화 조작을 통해 불황을 막으려는 시도는 인위적 호황을 초래하고 이는 위험에 대한 경계심을 둔화시켜 투기와 낭비를 부추긴다.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우리는 하이텍 버블과 부동산 버블, 그리고 그 붕괴를 통해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메디케어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하나다. 이것이 시행되기 시작한 1965년 이전 돈이 없는 노인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런 참상을 막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 덕에 노인들은 병원 치료비 걱정 없이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료 의료제가 실시되면서 의료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고 이와 비례해 노인들의 평균 수명은 나날이 늘어났다. 수요 증가는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고 시작 당시 연방 정부 예산의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던 메디케어 등 의료비 지출은 지금 소셜 시큐리티와 함께 전체 예산의 40%로 최대다.
문제는 앞으로다. 2010년 5,200억 달러 규모던 메디케어 예산은 2020년에는 9,300억 달러로 늘어나며 가입자 수는 2010년 4,700만에서 2030년 7,900만으로 증가하게 된다. 아직까지 흑자인 메디케어 펀드는 2024년이면 바닥난다. 의회 예산국은 “메디케어 등 의료비용이야말로 정부 지출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향후 이 비용 통제가 재정 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 노인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중의 역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3년 반은 물론 재선 캠페인이 한창인 지금도 이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을 내놓은 바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일한 해결책은 기존 메디케어 제도를 개혁해 수혜 폭을 줄이는 것인데 이런 얘기를 했다 노인들이 등을 돌리면 재선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재선 캠페인에 나선 대통령은 지난 4년간 자기 치적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올해는 이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3년 반 동안 불황에 허덕이는 미국 경제를 살렸다는 이야기도, 최대 업적인 오바마케어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롬니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가 하는 소리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공황 이후 가장 느린 경기 회복과 함께 실업률은 좀처럼 8%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바마가 그처럼 공을 들인 전국민 의료보험제는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업적만 가지고 얘기 하면 재선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 와중에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의료 보험 개혁을 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42세의 젊은 정치인 폴 라이언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 그는 무엇보다 메디케어 등 정부 의료 보험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미국 재정을 파탄내고 말 수밖에 없다며 그 개혁을 강력히 주장한 사람이다. 그의 선택으로 메디케어 개혁은 이번 선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게 됐다. 그의 선택에 민주당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롬니와 라이언을 싸잡아 ‘병든 노인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냉혈한’으로 몰면 이번 대선은 ‘따 놓은 당상’이란 계산인 모양이다.
선거는 이겨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놓인 위험을 유권자들에 정직하게 알리고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롬니와 라이언이 “우리가 아는 메디케어를 끝장내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아는 메디케어는 어차피 조만간 끝장나게 돼 있다. 아테네처럼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니며 끝날 것인지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새롭게 태어날 것인지만 남아 있다. 4년 전 ‘변화와 희망’을 부르짖던 오바마가 낭떠러지로 굴러가는 국가 재정을 팔짱 끼고 바라보는 기존체제의 수호자로 전락한 모습이 안쓰럽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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