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치마켓에 철을 앞서 벌써 단감이 나와 있다. 유난히 홍시감을 좋아하시는 한국의 부모님이 또 생각이 난다.
작년 봄에 오셨을 때 마켓에서 오렌지를 봉투에 담으시던 아버지께 봄철 오렌지라 맛이 없어 보인다며 굳이 만류를 했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코스코에 널브러져 있는 게 오렌지인데 한 박스 아니 한 트럭을 사서 갖다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다. 학창시절에 시험공부하느라 외웠던 시조 한구절이 이제는 마음 시리도록 와닿는다.
반중(盤中) 조홍( 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설워 하나이다
17년전 할머니께서는 내일이면 태평양을 건너갈 갓 결혼한 외손녀 부부의 손을 꼬옥 잡고 말씀하셨다. 왜 하필이면 미국이냐고 왜 그렇게 멀리 가야 하냐고 눈물을 훔치시는 할머니 옆에서 어머니께선“미국까지 가는데 10시간이면 금방 가, 요즘 세상이 좋아졌잖아요”하셨다.
그렇게 외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고 떠나왔는데 일년 후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세상이 좋아졌다더니, 10시간이면 갈 수 있다더니 한걸음에 달려가지 못하고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리지 못했다.
외할머니께서는 큰 딸인 내 어머니 말고는 작은 두 딸을 다 재일교포에게 시집보내셨다. 이모들이 한국에 오실 때마다 헬로키디 세트를 선물로 사다 주시곤 하셔서 일본에 이모들이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기쁨이었건만 외할머니께는 슬픔이셨다.
외갓댁을 방문 할 때마다 반주를 한잔 걸치시고 젓가락으로 박자를 맞추시며“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하시며 늘 두 딸들을 그리워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17년전 내 손을 잡고 흘리셨던 눈물은 당신께서 겪어온 그리움의 날들을 당신 딸과 손녀가 또 겪어가야 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눈물이셨던 것이다.
요즘도 나는 가끔 꿈을 꾼다. 택시를 타고 얼마를 갔는데 서울이다. 아버지부터 만난다.“아빠!”하고 달려간다. 아버지께서 물으신다.“아람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왔어?”“응, 택시타고~” 바다가 육지라면 얼른 택시타고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단감 한 박스하고 오렌지 한 박스 갖다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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