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온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기적으로 일상에서 탈출을 해야만 했던 나는 어김없이 배낭에 짐을 꾸리고 루앙프라방으로 향했다.
불교 국가 라오스에 왔으니 각 도시의 사원 탐방은 필수 코스다. 루앙프라방의 주요 명소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들고서 내가 찾아 가려고 했던 곳은 ‘왓 마이’라는 사원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내가 들고 있는 지도에 ‘왓 마이’라는 명칭이 라오스 글로 되어 있어서 현지인에게 그 곳을 계속 가리키며 “Where?” 라고만 반복해서 물었다. 그런데 그 현지인은 자신의 모국어를 읽을 수 없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살짝 짜증이 나려던 참에 어디에선가 “안녕하세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두리번거리니까 한 젊은 승려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내가 가려던 그 사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한국어를 너무나 유창하게 잘 해서 그에게 궁금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아니, 어쩜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세요? 한국에 가본 적이 있으세요?”
나이가 20대 중반도 채 되지 않은 이 승려는 한번도 한국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이 그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문화, 역사, 지리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해박하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없어서 라오스-영어 사전과 영한 사전을 가지고 혼자서 한국어를 습득했다며, 그가 정리한 한국어 단어 및 표현 암기장을 보여 준다. 순간 마음이 짠했다.
이토록 배움의 열망이 큰 이 승려가 살고 있는 라오스라는 나라는 문맹률이 50%가 넘는다. 대학 취학률도 고작 2%이다. 승려가 되면 그나마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다고 한다.
교육적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환경에 대해서는 어떠한 불만도 나타내지 않았지만, “언젠가 한국에 꼭 갈 거예요.” 라며 웃으며 말할 때 비춰지는 한국을 동경하는 그의 눈빛이 안타까웠다. 한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우리들은 그 동안 아무런 목적도 열망도 없이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가 내가 만났던 그 승려는 가지지 못한 기회들을 낭비한 건 아닌지 생각한 하루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