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맞아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60년도에 미국에 이민을 오신 시댁 큰 아주버님이시다. 시댁 쪽으론 이민생활의 개척자이신 거다.
그 당시 시골에서 8형제 중 장남인 아주버님은 부모 도움없이 계란 한 줄 들고 도시로 상경해서 미군 부대에서 일하며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학구열과 용기가 있으신 분이다. 지금이야 한국이 발전해서 잘 살고 있지만 60년도만 해도 어려운 때였고 미국은 가고 싶은, 잘 사는 나라 였지만 생경한 곳이기도 했다. 혼자 미국에 오신 후 가족을 데려 오기 위해 월남전에 참전해서 시민권을 얻고 6명의 결혼 안한 형제와 어머니를 한국에서 모셔 왔다.
형제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난 후 본인의 공부를 해나갔다. 이제는 그 형제들이 다들 가정을 갖고 잘 살고 있으며 2세들만 14명이나 된다. 한 사람으로 시작한 미국 정착은 22명으로 불어났다. 앞으로 더 많은 자녀들이 결혼을 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만약 아주버님이 꿈을 크게 품지 않고 시골에서 그냥 사셨다면 형제들과 2세들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으리라. 여기서 태어난 2세들은 좋은 대학을 나오고 전문직에서 일한다.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볼 때 아주버님의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했으면 좋겠다. 아주버님은 한번도 식구들을 미국땅에 데려온 것을 자랑으로라도 내세우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친정 쪽으로는 내 위에 언니가 형제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다. 그 덕에 조카들이 좋은 대학도 나오고 직장도 다니고 있다. 언니는 자기덕에 미국에 왔다고 알아 달라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제들이 잘 살지 못할까 염려하고 걱정한다. 나는 소심해서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직장은 있는지 걱정을 하는 사람이라 아주버님이나 언니처럼 개척정신이 강한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도 어느 분야에 있든지 이런 개척정신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혜택을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아주버님과 언니가 한 것처럼.
올 추수감사절은 어느때보다도 형제들의 사랑에 감사하고 나도 그런 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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