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하늘이 왕창 뚫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다가 하늘 위에도 바다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내내 죽치다 살이 얼마나 쪘는지,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장날인가 봅니다. 길거리에 늘어진 찬거리와 군것질거리가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아이들과 맛난 것을 하나씩 사먹고 또 걷습니다.
사람을 봅니다. 인생을 봅니다. 그들만의 철학과 삶의 이념들도 봅니다. 설레임을 봅니다. 좌절을 봅니다. 축축히 비에 젖은 길바닥에 얇은 나무판자 하나 깔고 앉아 몸빼바지 속 돈주머니를 꺼내는 능숙한 손동작에서 깊이 서린 한과 삶의 지혜를 봅니다.
뜨거운 김이 모락 나는 찰옥수수를 들추는 아낙네의 거친 손등에서, 매운 고추를 별 맵지 않다고 하시는 등이 휜 할머니의 고집스런 광고 속에서, 퍼드득거리는 기운 센 물고기의 몸통 비트는 힘을 단 두 손가락으로 제압해 버리시는 아주머니의 비늘 떡진 손등에서, 소라 사려는데 옆에 따로 팔던 작은 고동 한 접시 덤으로 섞어 담아주시는 인정에서, 약 안치고 하도 달아 벌레먹었다며 위풍당당 벌겋게 농익은 자두 한바구니 털어 넣어 주시며, 그래도 끝내 맘편치 않아 이백원 도로 거슬러 주시는 고귀한 양심에서, 금방 쪄낸 떡과 금방 삶아 걸른 두부를 나란히 놓고 목욕탕집인가 착각할 만큼 김을 모락 피우시는 아주머니의 화상 입은 듯 뻘개진 손바닥에서… 자신만의 것은 오래전에 포기한 듯한... 시커멓게 흙때가 낀 손톱과 손금 주름... 더 소중한 것을 위해 비오는 날의 장에서 커피 한잔을 든 뭉뚝해진 그들의 떨리는 손이 왜 이리 눈물겹게 아름답습니까...
깔끔히 차려입고 나선 나의 도시적 세련미가 갈치젓갈, 생선비릿내, 푸성귀의 풋내가 범벅되어진 찝질한 장터 안에선 왜 이리 초라한지요... 뭔가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듯 까닭없이 허무해지는 그때는, 어떤 것이 더 소중한지 판단이 희미해지는 그때는, 비오는 날 시골장터에 나가 볼 일입니다.
잠시의 유익을 위한 엄청난 실랑이 뒤에라도 그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끝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도우는 것, 사람을 얻는 것만이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터득한 이들이 모여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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