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교 없는 흙 자체 우리 고유의 선 사랑의 표현 같아$
▶ 관람객에 차 대접하며 성심껏 설명$ 순진함과 푸근함 배어나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지산 이종능의 분신인 도예작품 ‘토흔’은 투박하지만 세련되고 비대칭의 소박미를 가진 조선의 흙과 선을 표현한다. <하상윤 인턴기자>
■ 삶과 열정 Life & Passion
지금 LA 한국문화원에 가면‘특별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도예작가 지산 이종능의 도예전‘토흔’. 특별한 전시라고 한 이유는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아름다움과 예술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여느 작가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성실함과 진지성에 대한‘경외감’ 때문이다. 지난 18일 오프닝 리셉션에 갔을 때 처음 놀란 것은 작품들을 모두 항공으로 공수해 왔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놀란 것은 전시회 시작일로부터 끝나는 날까지 작가가 전시장을 지킨다는 사실, 세 번째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도예가가 마치 어린아이 같이 순진하고 겸손하며 시골아저씨처럼 친근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첫 번째의 놀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주요 작품 70여점, 소품까지 합치면 100여점의 도예품을 작가가 직접 비행기 태워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보통 미국 전시를 위해 한국서 오는 작가들은 운송비를 아끼기 위해 작품을 미리 선박편으로 부치거나 그림만 떼어와 현지에서 액자를 하곤 한다. 그런데 그림도 사진도 아닌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100점이나 꽁꽁 싸들고 왔다니 다들 놀랄 수밖에. 작가에게 물어보니 패킹, 보험, 항공료에다 전시도록까지 이번 전시에 기본경비만 3,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경비 생각하면 전시하지 않습니다. 전시하면서 한 번도 스폰서를 받은 적도 없어요. 21세기 미국의 중심에서 작품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한국의 흙과 불과 혼을 보여주는 전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10년 전부터 미국에서 전시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 왔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 오기 전 먼저 가장 까다로운 관문인 일본을 두드렸다. 일본에서 성공하면 도예가로서는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쿄 한국문화원 초대전(2010)과 오사카 한국문화원 초대전(2011), 두 전시가 모두 대 성황리에 끝나자 비로소 미국 전시를 추진했다. 그 전에도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전시와 함께 오기 위해 아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의 놀람, 보통 작가들은 오프닝에만 참석하고 거의 전시장을 비우는 게 상례인데 이 작가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이번이 열 번째 개인전인데 한 번도 전시기간 전시장에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부모가 옆에 있어야 더 힘이 나는 것처럼 그저 홀로 놓아두기가 안쓰러운 겁니다. 그리고 만일 전시장에 한 사람도 안 오면 작품들이 심심해서 어쩝니까? 저라도 있어야 안 심심할 거 같아서 자리를 지켜주는 거죠”미국에 처음 왔으니 구경 좀 다니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구경은 언제고 또 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5년 동안 준비한 전시인데 이걸 두고 구경을 가다니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라며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세 번째 놀람은 두 번째 놀람과 일맥상통한다. 보통의 한국 작가들은 일단 ‘작가적 태도’를 견지하고, 작품에 대해서는 “감상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며 설명을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작가가 전시장에 나와 있는 것을 약간은 촌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이 작가는 누구에게든 성심껏 설명하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직접 한국서 가져온 차까지 자기가 만든 찻잔에 대접하는 수고도 마다 않는다.
“지리산 야생 햇차를 우전으로 가져 왔습니다. 찻잔 도구는 집에서 늘 사용하던 것들을 그대로 갖고 왔지요. 사람들은 전시장에 오면 대충 작품만 휘릭 보고 돌아가는데 도예가로서 최소한 차 마실 분위기는 만들어드려야 되겠다 싶어서 준비해 왔습니다”손님 접대가 이쯤 되다보니 심지어 문화원 견학 오는 미국 초등학생들도 그에게는 귀한 손님이다. 한국의 도자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도록에 그림 그려 사인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더니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며 정말 어린아이처럼 기쁜 표정을 짓는다. 이런 작가를 만나면 작품을 다시 보게 되고, 정말 작품이 다시 보인다.
비대칭의 소박미를 가진 ‘토흔’과 달항아리 연작으로 유명한 지산 이종능(56)은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에밀레종과 첨성대, 계림숲, 석빙고가 놀이터였다는 그는 자연박물관에서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어린 시절에 대해 지금껏 감사하고 있다. 그런 유물들 속에서 살면서 우리의 선에 대한 감흥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을 것이라는 그는 지금 작품에 드러나는 선, 그만이 가진 색이 다 거기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도예를 필생의 업으로 택했는데 한국의 전통 도예만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3년간 배낭 메고 일본, 대만, 중국, 태국, 몽고는 물론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하며 3년간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흐름을 체험한 것이 지금의 작품세계 ‘토흔’을 낳게 했다.
토흔은 ‘흙의 흔적, 세월의 느낌, 간절한 기도’를 담은 도자기 이름으로, 기교 없이 흙 자체가 예술이 되는 도자기, 섭씨 1,300도의 불길 속에서도 원래 흙의 본성과 느낌을 잃지 않는 도자기, 시대를 초월한 도자기를 열망하며 빚어낸 작품이다. 원시시대 토기를 닮은 이 도자기에 대해 작가는 “내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 가슴에 녹아 손끝으로 흘러내려 탄생시킨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다.
이종능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작가로 선정되어 초대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KBS·NHK 한일합작 월드컵 홍보다큐 ‘동쪽으로의 출발’에서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렸고, 2004년에는 서울서 열린 세계 글로벌기업 자문회의에 참석한 최고경영자 23인의 부부 찻그릇을 제작함으로써 유명해졌다. 2007년 대영박물관에서 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을 열었고, 이때 선보였던 달항아리는 도쿄, 오사카 전시회 때도 관심을 끌어 아사히 방송이 지산에 대해 특집 방송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오사카 역사박물관이 달항아리를 소장한 것을 비롯해 러시아 세인트피터스버그 국립민속박물관과 중국 항주국립 다엽박물관, 한국의 개인과 기업체 및 해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현재 광주 퇴촌에 도자기 공방을 갖고 있는 그는 모든 제작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낸다고 한다. 작가들은 유명해지면 제자들이 많아지고 작품제작도 분업화되지만 “내가 하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는 지산은 가마 불 때는 일부터 모두 혼자 도맡아 하고 있다.
지리산 흙을 위주로 전국의 흙을 쓰는 그는 조선시대 우리 도공들이 그랬듯이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고유의 아름다운 선만 살리는 작품 창조에 매진하고 있다.
“동시대 일본과 중국에 비해 제작환경이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대우 받지 못했던 도공들은 체계화되지 않고 배운 것 없이 도자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조선시대 백자가 아름다운 것은 그런 부족함이 만들어낸 균형과 조화의 절제미 때문일지도 모르죠”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름다운 선만 살리는 꾸밈없는 자세, 그는 그것을 ‘사랑’의 표현과도 같다고 말한다. 가장 최고의 경지요,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말문이 막히고 할 말을 잃는 작품, 그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산 이종능 도예전은 6월6일까지 열린다.
5505 Wilshire Blvd. LA, CA 90036, 문의 (323)936-3014(전시담당 최희선)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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