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선 <시민참여센터>
지난 11일, 뉴욕의 퀸즈보로 대학, 쿱퍼버그 홀로코스트 센터에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꽃다운 열 다섯의 이옥선은 어느 날 동네에 나타난 무뢰배들에게 납치되어 중국 땅에서 일본군인의 ‘위안부’가 되었다. 그리고 아흔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그녀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그녀는 일제 학살과 만행, 당시 국가간 이해관계와 이념적 긴장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른바 역사의 힘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쉽게 훼손하고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다시 어떤 형태로 역사를 구성하는지, 그것과 관련하여 그 개인이 속한 국가-민족 공동체는 지금 어떤 능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날 자신의 이야기, 무려 70여 년 전의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또렷하게 들려주시던 할머니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셨다. “일본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진실이 달라지진 않아. 이젠 나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는데, 죽기 전에 일본이 사과하는 걸 꼭 보고 싶어.”
그 순간 나는 문득 걱정스러워졌다. 할머니 말씀처럼 진실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할머니의 ‘증언’이 갖는 생생한 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은근한 정서적 공감대는 희미해지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곧이어 사회를 보던 초로의 유대인이 덧붙인 말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오늘 들은 이야기를 나는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할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우리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언제나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저들은 언제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것은 개인 단위의 소박한 이야기 수준에서부터 소설, 영화, 그림, 사진, 콘서트 등등 문화산업 전반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계속되어 왜 유대인들은 전후 독일의 사과와 배상 이후에도 끈질기게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트라우마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주요한 무형의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그 비극을 딛고 유대인들은 살아남았고, 훌륭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공동체의 미래세대들과 바깥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선언하고 있는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것이 진실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도,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며 살아남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진실한 역사로, 공통의 기억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저 유대인들의 방식처럼 나의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끈질기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진실을 지키고 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어쩌면 그것이 ‘5년, 10년만 더 버텨서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면 무조건 우리 승리’라고 얕은 수를 쓰고 있는 일본 우익들에게도 멋진 복수가 되는 길은 아닐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