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8월11일 오후 7시, 사우스LA 왓츠(Watts). 100도에 가까운 무더위 속에서 백인 경찰 2명이 흑인 운전자와 그 형을 곤봉으로 두들겨 팼다. 혐의는 음주운전. 몰려든 구경꾼 가운데 청년의 어머니가 항의하자 경찰은 가족 모두를 체포하려 들었다. 순간 군중이 돌을 집어던졌다. 흑인들은 백인과 유대인 상점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유명한 왓츠 폭동이다.
비슷한 사태가 지난 1992년에도 일어났다. 흑인을 무차별 구타한 백인 경찰들에 대한 무죄평결로 발생한 LA 폭동에서는 애꿎은 한인 상인들이 흑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수많은 마켓, 리커 그리고 스왑밋 등 한인 업체가 화재로 소멸되고 주민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약탈행위를 자행했다.
왓츠와 LA 폭동은 발생 지역 및 계기 등에서 매우 유사한 사건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피해 업주들이 폭동 이후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이다. 왓츠 폭동의 피해자 백인과 유대계 상인들을 점차 왓츠에서 사라졌다. 반면 한인 업주들은 그동안 일궈온 아메리칸 드림이 하루아침에 한줌의 재가 됐지만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다시 빌딩을 세우고 스토어를 오픈한다.
한인들이 다시 일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단체가 바로 한인식품상협회(KAGRO)다. 협회 임원진은 폭동이 발생한 날부터 바로 피해상황을 한인 및 주류언론에 전달했으며 FEMA 담당자들과 만나 재건에 필요한 융자 등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한인타운을 방문했을 당시 피해 업주 대표로 식품상협회 임원진이 나서기도 했다. 당시 식품상협회의 도움을 받아 업소 건물까지 소유하면서 현재 수백만달러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리커, 마켓 업주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식품상협회가 지난 10여년 간 수많은 내분을 겪으면서 여러 개로 갈라진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주류업계에서도 분열된 협회마다 따로 따로 기금을 지원하다가 최근에는 지원 자체를 중단했다. 어떤 협회가 진짜 협회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이유다.
지속된 법정투쟁 등으로 인해 단체가 한미식품상총연합회, 가주식품상협회, 국제한인식품주류상연합회, 가주식품주류상협회 등으로 갈라지고 새로운 이름들이 만들어지면서 “구멍가게 주인들은 주요 한인 경제단체를 맡을 자격이 없다”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최근 양분된 채 반목을 거듭하던 남가주 한인식품주류상협회가 다시 뭉쳤다. 협회 측은“LA에서 처음 시작된 협회는 현재 전국 3만5,000여 회원을 갖춘 한인 최대의 경제단체 네트웍으로 발전했지만 잦은 내분으로 완벽하게 회원들을 돕는 단체가 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폭동이라는 엄청난 아픔도 이겨낸 식품상협회가 꼭 옛 명성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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