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인 ‘부유한 하루살이’ 왜?
▶ “은퇴 후 믿을 건 주택” 쪼들릴 것 알며 구입, 비상금 없어 질병·실직 발생 땐 감당 못해, 유동성 빚 많아 유럽국가들보다 훨씬 취약
2,500만가구에 달하는 미국인 중산층들이 그날 벌어 쓰는‘하루살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발표됐다.
미국인 중산층 2,500만명 이상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브루킹스 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경제연구 보고서가 밝혔다. 보고서는 그러나 이들 모두가 돈이 없어 이같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은퇴연금 어카운트를 가지고 있지만 당장 사용할 비상금을 모아두지 못하고 그날그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들이 주택을 구입하면 여윳돈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적의 장기 투자처로 생각해 주택을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경제 학자들은‘부유한 하루살이’(wealthy hand to mouth)라고 표현했다. 유동성 자금은 없으나 비유동성 자산은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010년 센서스 결과를 근거로 미국 1억1,700만가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800만가구가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산다’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번 수입을 모두 다 써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들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6%는 수입 중간 값이 4만1,000달러 이상의 중산층이었다. 이들 ‘부유한 하루살이’들은 주택이나 은퇴연금 등을 합한 순수자산의 중간 값이 4만1,000달러이지만 세이빙 어카운트나 뮤추얼 펀드 등 급할 때 비상금으로 현금을 인출해 사용할 수 있는 기금은 모아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그레그 카플란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미국인들이 이렇게 많은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2만1,000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저소득층(가난한 하루살이)은 그나마 모아둔 재산도 없었다. 반면 연 수입 5만1,000달러 이상에 11만6,000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은 비교적 저축 등 나름대로의 비상금을 모아두며 살아갈 정도로 여유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근근이 먹고 사는 미국인들은 갑작스런 질병이나 실직 등의 외부적 충격을 당하면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이번 보고서는 따라서 가정들은 지출을 줄여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여윳돈을 마련하는 방법을 조언했다.
소위 ‘가난한 하루살이’는 대부분 수입이 낮은 젊은 층인 반면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부유한 하루살이’는 40대 이상 연령층들이었다. 특히 40대 전후가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이들 중산층 가정들이 은행에 저축이나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등의 비상 대비 자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카플란 교수는 한 가지 가능한 이유로 주택이나 은퇴자금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어 비상금 모으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고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차후 돌아올 이익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 주택이나 은퇴연금에 투자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윳돈 없어도 집은 산다
많은 미국인들이 집을 사면 사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프린스턴 대학의 마크 아퀴아 경제학 교수는 “주택 소유주들은 집을 구입하면서 인생에 가장 큰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집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또 이로 인해 돈을 모으기 힘들다는 것도 인지하면서도 은퇴 후 가장 믿을 만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집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생각은 일반사회 통념을 뛰어넘는 것이다.
대부분 재정 설계사들은 비상시 3~6개월간 지출할 수 있는 비상금을 모아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실제 비상금을 모아두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인 대부분이 평생 근근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은 평균 3.5년, 저소득층은 4.5년간 현금 없이 번대로 쓰며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이 유동자금 더 많아
연구팀은 미국과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방 국가들과의 비교 연구도 실시해 국가 및 지역 간 차이도 규명했다.
미국과 같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부유한 하루살이’ 비율이 비슷하게 나왔으며 연령대 역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루살이 비율은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경우는 40%가 ‘하루살이’였고 이 중 30%가 ‘부유한 하루살이’로 나타났다. 반면 이탈리아는 15%만이 하루살이로 나타났으며 ‘부유한’ 가구 역시 10%에 지나지 않았다.
또 미국과 캐나나, 영국의 ‘가난한’ 그리고 ‘부유한’ 하루살이 비율이 가장 컸다. 반면 호주는 앵글로 색슨 계열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비율이 낮은 국가로 나타났다. ‘가난한’ 하루살이는 거의 없었고 ‘뷰유한 하루살이’는 20%로 나타났다. 이는 호주 정부가 모든 고용주들에게 종업원을 위한 은퇴연금 플랜을 의무화하고 있어 호주 인구의 거의 85%가 은퇴연금 계좌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유럽 전체와 비교해도 미국과 캐나다 영국은 가구들의 유동성 부채가 많다. 이는 유럽 국가들의 크레딧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 비상시를 대비한 유동성 자금을 모아두는 비율이 미국 등보다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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