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돈 벌러 간 자녀들 송금으로 과테말라 시골곳곳 대형주택 신축붐
▶ 정작 가족은 생계 유지에도 허덕이다 저택 세주고 옆에 오두막 지어 살기도
백·적·청색으로 산뜻하게 신축되었으나 방치된 한 저택의 지붕 위를 장식한 독수리 조각.
알레한드로 로하스는 미국에 돈 벌러 간 자녀들이 송금한 돈으로 이 저택을 마련했지만 이 큰 집의 유지는커녕 남아있는 아이들 먹여 살리기도 힘든 형편이어서 옆에 오두막을 지어서 살고 있다.
과테말라의 지방자치구역 카브리칸의 시골, 산안토니오. 화산대 언덕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 입구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흰색의 2층 빌라는 미 남부 어느 윤택한 교외지역으로 옮겨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붉은 타일지붕 아래 둥근 기둥들이 포치를 떠받치고 있고 하얀 창살의 유리창들, 널찍한 방들, 반짝이는 곡선의 손잡이와 상감세공 유리로 장식된 문들, 자동문이 달린 차고 등 모두가 훌륭하다. 같은 담장 안 4피트 떨어진 곳엔 어두운 단칸방의 오두막이 서 있다. 6명 자녀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쩔쩔 매는 저택의 주인, 알레한드로 로하스가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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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9남매 자녀 중 위의 세 아이들(16·22·25세)이 미국 애틀랜타에서 일하며 보낸 돈으로 저택을 지었고 유지한다. 남는 돈으로는 기본 식비도 감당하기 힘들다. 로하스는 큰 아이들이 언젠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저택을 주일 예배용으로 교회에 세를 주었다고 했다.
이 같은 저택들은 멕시코와 중미 전역 곳곳에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산안토니오처럼 젊은 사람 상당수가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가난한 작은 마을들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저택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다.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채 중단된 경우도 있고 집주인이 안 돌아온 경우, 마을의 다른 집들과 너무 달라 그 안에 들어가 살기가 편치 않아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미국에 간 과테말라 이민들의 꿈은 이 같은 대저택과 기초생활에도 못 미치는 일상의 가난이 공존하는 부조화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지만 이곳으로 돌아오면 달라진다. 마을의 맨 상류층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라파엘 란디바 대학의 인류학자 루스 헤레라는 설명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이고 성공의 사회적 상징은 집이다”
이곳에서 가난은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다. 카브리칸 2만5,000명 인구의 80%가 빈곤층이다. 인구의 4분의 3은 30세 미만의 젊은 층인데 왜소 성장 비율도 상당히 높아 70%에 달한다.
카브리칸 지역 전체 인구 10명 중 2명은 미국으로 갔다. 가족 중 누군가가 미국에 가지 않은 가정은 거의 없을 정도다. 일자리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교사나 간호사 등 전문직도 취업이 힘들다. 그래서 너도나도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향한다.
미국 내 과테말라 이민은 합법과 불법 합해 150만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들이 보내는 송금액도 2001년 이후 7배로 증가했다. 금년엔 59억 달러로 과테말라 국민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뱅크 오브 과테말라는 예상했다.
“송금으로 맨 먼저 가족을 위한 저택 신축을 생각한다”고 말한 카브리칸의 비텔리오 페레즈 시장은 “그 결과로 저택과 자동차와 포장도로 등이 흔해지면서 산안토니오 같은 작은 마을들이 알아보기 힘들게 변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현금유동은 만성 영양부족, 문맹, 기본 건강 및 교육서비스 부족 등 이 지역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고질 해결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라파엘 란디바 대학 데이빗 헤르난데즈 교수 연구팀의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송금에 의존하는 대저택들은 위험한 투자다. 로하스네 저택 신축에 들어간 자녀들의 송금액은 약 6만4,000달러, 과테말라 돈으로 50만 케찰에 해당한다.
로하스처럼 초등학교만 졸업한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월 1,904 케찰이다. 한 푼도 안 쓰고 21년 넘게 모아야 이 같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차고의 자동 문 하나 가격이 두 달 치 수입과 맞먹는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추방을 당하거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면 송금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저택은 채권자에게 넘어가거나 거대한 무용지물로 방치되기도 한다.
케찰테난고라는 지역의 산길 옆에는 나이키 로고로 장식된 저택이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고 멀지 않은 곳엔 지붕 꼭대기에 빨강, 하양, 푸른색으로 페인트 된 5피트 독수리 조각이 올라앉은 저택이 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텅 빈 채 서 있다.
이민자들의 새로운 미국식 취향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저택에 대해 헤레라 교수는 “그들은 꿈을 이루는 시작으로 성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꿈을 이루고 성을 완성해 안주한 성공적인 케이스들도 물론 있다.
아름다운 꽃과 기하학적 무늬의 화려한 타일로 장식된 밝은 녹색의 이층 저택은 안드레스 로페즈가 땀 흘려 이룬 성공의 상징이다. 12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며 송금한 돈을 아내가 차곡차곡 모아 흙벽돌의 옛집을 부수고 타일로 장식한 저택을 세웠다. 가족을 떠나있던 미국생활이 너무 외로워서 돌아왔다는 로페즈는 아름다운 집에서 감자 깎으며 사는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만족해했다.
트럭을 사서 금년 봄에만 인근에서 송금으로 짓고 있는 15채의 저택 신축을 도왔다는 그는 자신의 집 옆에 아들을 위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14세 때 돈을 벌려고 미국으로 건너 간 아들은 미국에서 결혼하고 아기도 낳았으며 합법 신분도 취득했다.
“1년에 두세 달씩 방문차 올 겁니다. 그럴 때 여기서 머물면 되지요”라면서 그는 정교하게 마무리되고 있는 마루바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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