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근제한구역 10km 거리 자살·갑작스런 죽음 많아
▶ 숨쉬기조차 힘 들지만 아픔 공유하며 회복 노력

구보레비치는 마을 전체가 폐허를 연상시킨다. 한 노인과 그 아들이 마을을 걸어 나오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 주변지역에는 접근 금 지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곳곳에 있다.
체르노빌은 현재진행형
“저 묘지 옆으로 사방에 집들이 있었어요. 낮에 채소 직판장이 열리고,밤이면 콘서트장 주변이 시끌벅적했죠. 400명이 넘게 살던 곳에 지금은12명밖에 남지 않았네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6년,지금의 우크라이나 중북부의 국경도시인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폭발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당시방사능 피폭 등에 의해 6년 내 사망한 사람만 2만5,000여명, 이후 직·간접 피해로 인한 사망자가 10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촌최악의 원전사고였다.
지금은 접근제한 구역으로 막혀있는 체르노빌에서 10여킬로미터 떨어진 벨라루스 남쪽 작은 마을 구보레비치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낮인데도 마을은 인적이 드물었다. 그나마 마주치는 이들 대부분은 노인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묘지에는 현재 살고 있는 주민 수보다훨씬 많은 비석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전 우체부로일했던 지나이다 카다쉬(62)는 “어린아이가 있는 집들은 사고 직후 마을을 떠났고 199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사람들이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떠난 사람들, 남은 사람들
실제 30년이 흘렀지만 방사능 공포는 여전하다. 건기가 되면 접근제한구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로유해물질이 날아와 숨쉬기조차 힘든날도 있다. 그런데도 카다쉬는 “피난한 이웃 중 대다수가 5년 이내에 스트레스로 사망했다. 대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재앙이라면,차라리 고향에서 남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체념이었다.
사실 그랬다. 피난한 사람들이라고해서 장밋빛 삶이 기다리고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동쪽 외곽에 위치한‘ 발자크 거리’에는 도시전체가 강제 피난구역이 된 프리피야트 주민과 원전 노동자들이 모여살고 있다. 사고 이후 정부가 제공한아파트로 4만4,000여명이 함께 이주했는데, 30년 사이 1만5,000명으로줄었다.
이 지역에서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들을 돕는 비영리단체 ‘젬랴키’의 크라시스카야 타마라 대표는 “사고 뒤5년 동안 자살과 갑작스런 죽음이 많았다. 특히 원전 내부나 제염 노동자로 일한 남자들은 갑상선, 기억상실,면역체계 문제 등으로 고통 받다가대부분 숨졌다. 그래서 여기는 미망인이 흔한 도시가 됐다”고 했다.
의료기관이 관련 정보를 일절 제공하지 않아 이들의 사망에 대한 공식통계는 없다.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법은 마련됐지만 피폭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받기가 어려워 수혜자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젬랴키는 전 세계 후원금을 통해치료가 필요한데도 비용을 댈 수 없는 체르노빌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방사능보다 무서운 불안과 공포
“처음에는 그냥 앉아서 함께 울기만 했어요.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없었을 때니까. 잃어버린 가족과 친구를찾는 게시판 같은 역할을 하자는 게단체의 시작이었죠. 그러다 피해자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을보고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타마라 대표는 시간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피해자들 사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대두됐다고 했다. 낯선 환경에 불안한가정, 여기에 기존 지역민들이 가하는차별까지. 스트레스의 원인은 도처에널려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심리상태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체르노빌 사고 20주년을 맞아 국제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보고서는‘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의학적으로설명할 수 없는 정신질환 등이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생존자보다 피해자로 존재하면서 갖게 되는 무력감과 미래에 대한 비관 탓에 알콜, 게임중독 등에 빠지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그린피스 등에선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죽음과 질병이 수만 건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체르노빌 거대한 덮개 공사중
지난 11월 어느 월요일 아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발전소. 노동자들을가득 실은 출근 버스가 몇 대 지나가는가 싶더니 원전사고 20주년에 세운희생자 추모 위령탑 옆으로 직원들이삼삼오오 한가롭게 발길을 옮긴다.
취재진이 직접 가본 체르노빌 원전 현장에서는 30년 전 폭발사고가났던 원전 4호기를 초대형 아치 구조물(신석관)로 완전히 덮어 버리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원전을 덮어 버리는 신석관은 높이110m, 너비 260m, 무게 3만1,000톤에 달하는 아치형의 초대형 구조물이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높이 93m),시드니 오페라하우스(길이 183m)도담을 수 있는 크기다. 구조물 자체에만 15억달러, 총 공사예산은 40억달러에 달한다. 아치형의 두 구조물은거의 완료됐고 현재 이 둘을 연결하는 브리지를 건설 중인데, 내년 완공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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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고는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23분 당시 소련, 현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전기출력을 높이는 실험을 하다 통제수준 이상으로 높아졌고 결국 원자로가 제어 폭을 벗어나면서 원자로내 노심용융이 발생, 이어 두 번의 수증기 폭발이 일어났다. 진화되기까지열흘간 방사성 물질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로 인한 공식 사망자는 4,000여명, 피난민 35만명이지만 사이언스아카데미는 체르노빌 참사로 1986년에서 2004년까지 100만명에 가까운사람들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질병은 세대를 이어가며 계속되고 있다. 레벨 7의 규모로 역사상 후쿠시마와 함께 최악의원전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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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혜경, 사진-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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