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격 이어진 멕시코 방문
▶ 종교와 정치 아슬아슬 행보

멕시코를 방문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7일 미국과의 국경 지역인 시우다드 후아레스의 가설 제단에서 20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미사를 집전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멕시코 정치 지도자들이 특권을 버리고 부패와 전쟁을 벌여 진정한 정의 구현에 앞장서야 한다”지난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멕시코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을 만난 뒤 “정치 지도자들이 마약이 연루된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라며 “소수를 위한 특권과 혜택은 부패와 마약 밀매, 다른 문화의 배격, 폭력, 인신매매, 납치, 살인 등이 활개칠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부패와 불평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이튿날 멕시코 내 대표적인 빈민 지역인 에카테펙에서는 30만여 명의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미사를 집전하고 “탐욕에서 비롯된 부유함은 고통의 쓴 맛이 나는 빵”이라며 “부패한 사회가 이런 빵을 아이들에게 인심 쓰듯 나눠주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마약 밀매 업자들을 향해서는 아예 ‘죽음의 거래상’이라고 부르며 “마약으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이 더 이상 멕시코에 존재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교황의 이 같은 ‘정문일침(頂門一鍼)’은 부정부패가 일상처럼 번져있는 멕시코 고위 공직자들을 향해 작심하고 ‘쓴소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멕시코에서는 2006년 이후 최근까지 약 10년 동안 마약과 폭력에 연루된 사망자가 10만 명에 달하며 2만7,0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교황은 17일 미-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미사를 열고 미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이민자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사회 전반 넘나드는 파격행보
2013년 3월 즉위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정치와 사회,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행보가 거침이 없다. 지난 12일 쿠바 방문에서는 당시 쿠바를 공식 방문 중이던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와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만났다. 교황과 정교회 실세격인 러시아 정교회 수장이 만난 것은 1054년 가톨릭 교회가 동방과 서방으로 분열된 이후 처음이다.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도 총대주교와의 만남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던 일이다. 이들은 3시간 동안 개별 면담을 한 뒤 이라크, 시리아에서 박해당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말에는 현직 교황으론 처음으로 영화 배우로 데뷔한다. 다양한 문화권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영화 ‘비욘드 더 선(beyond the sun)’에 출연하기로 한 것. 영화는 “아이들이 쉽게 성경을 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교황의 요청을 미국 영화제작사 AMBI 픽쳐스가 받아들이면서 기획됐다. 교황은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아이들에게 예수를 만날 방법을 알려준다. 비욘드 더 선은 이탈리아에서 크랭크인 한 뒤 연말에 개봉할 예정이다. 수익금이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어린이 지원 단체에 모두 기부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출연’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행보에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다.
2013년 3월에는 성 목요일에 교회의 전통법규를 무시하고 소년원을 찾아 이슬람 교도를 포함한 소녀 두 명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거행했다. 또 교황청을 찾은 10대들과 다정하게 ‘셀피(Selfie)’ 사진을 찍는가 하면 교황청을 찾은 라니아 요르단 왕비에게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노숙인 초청 미사(2013년 12월), 교황 신분으로 일반 사제에게 한 고해 성사(2014년 3월) 등도 화제가 됐다. 2014년 1월에는 수천 명의 군중을 접견하던 중 1990년대 알고 지냈던 오랜 친구이자 아르헨티나 신부를 만나자, 자신의 차에 함께 태운 일화는 유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은 발언들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교황은 지난해 9월 자비의 희년(2015년 12월8일~2016년 11월20일)에 한시적으로 낙태 여성을 용서하겠다고 밝혔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중죄로 간주하기 때문에 낙태 여성과 낙태 시술 의사들은 파문 당한다.
앞서 교황은 동성애와 이혼 등 그 동안 가톨릭 금기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등 포용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같은 해 7월에는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젊은 사제와 수련 수사, 수녀들에게 “고급 자동차를 사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국 방문 때 소형차를 이용하고 비교적 작은 호텔방에 체류하며 최소한의 식사를 하는 등 검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교황이 냉정을 잃고 화를 내는 소동도 있었다. 지난 16일 멕시코 모렐리라 미사 후 군중과 인사를 하던 중 한 참석자가 옷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휠체어에 앉아 있던 젊은이 위로 넘어진 것. 교황이 넘어졌는데도 이 참석자가 계속 붙잡고 있자, 교황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두 차례나 내뱉기도 했다.
■ “지나친 정치개입은 문제” 비판도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같은 현실 정치와 종교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광폭 행보에 대한 비판과 마찰이 적지 않다.
교황은 2014년 바티칸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서 “생명이 진화를 통해 발달했다는 생각이 가톨릭의 가르침(창조론)과 충돌하지 않는다”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기독교와 현대 과학의 오랜 논쟁이었던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진화는 창조의 개념과 대치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런 발언은 전임 베네딕토 16세의 “기독교인들은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는 설교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창조론을 담은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냐”는 극단적인 비판도 나왔다.
특히 지난해 6월 발표한 두 번째 회칙에서는 “기후 변화가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을 담으면서 정치 개입 논란을 불렀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각종 환경 규제 입법을 예고했고 공화당 진영과 에너지 업계에서는 “개인 업적을 위한 것일 뿐 미국 경제를 망치는 것”이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공화당 대권도전을 선언했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종교를 정치 논쟁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 종교는 정치 영역에 관여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사람답게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교황의 정치 개입에 문제를 제기했다. 제임스 인호페 상원의원,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등도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신학과 도덕에 집중해야 한다”라며 교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번 멕시코 방문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집단 피살된 교육대생 43명의 부모들과의 면담을 돌연 취소한 것도 논란을 빚었다. CNN 멕시코의 여론조사에서는 멕시코 국민의 3분의 2가 교황과 대학생 부모와의 이번 만남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방문 하루 전에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중남미 뉴스전문 위성채널 텔레수르는 “약자와 소외받는 이들의 친구로 인식됐던 교황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고 지적했다. 영화 출연에 대해서도 “지나친 대중적 행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바티칸 역시 “교황이 본격적으로 배우로 나선 것은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나섰다.
바티칸 내 보수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직접 공개 비판뿐 아니라 가톨릭 웹사이트, 책과 홍보물, 그리고 바티칸 내부의 비리와 트집거리들이 언론에 유출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가톨릭 교회 266번째 수장인 교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내부 불만이 이어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파격적 격론 주제 잇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미 즉위 때부터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 받으며 가톨릭 내 다양한 변화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또 여러 분야에서‘최초 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가톨릭 사상 최초의 미주 출신(아르헨티나) 교황이며,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고, 최초의 남반구 국가 출신이기도 하다. 교황 그레고리오 3세(시리아) 이후 1,282년 만에 즉위한 비유럽권 출신이다.
교황을 둘러싼 이런 논란에 대해 교황 지지자들은 “가톨릭 내부에서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교황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14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는 이혼과 재혼, 동성혼, 피임, 혼전 섹스 등 가톨릭 금기 조항들이 모조리 격론 주제로 등장했다. 물론, 41명의 주교 및 추기경들이 회의장에서 즉시 반대했고 대다수 주교단도 반대표를 행사하면서 최종 보고서에서는 교리나 입장 변경은 없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교황은 “앞으로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교황의 가까운 친구로 알려진 블라세 쿠피치 미국 시카고 대주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은 문제들을 공개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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